드라마 보다가

지붕킥 결말,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파리아줌마 2010. 3. 21. 19:52

지붕뚫고 하이킥이 종영되었다.

그렇게 꼼꼼하게 챙겨보지는 않았는데, 종영주간에는 월요일 방송부터 보게 되었다.

결말에 대해 네티즌들의 여러가지 추측들이 난무했고,

그간 가볍고 보고 넘기는 시트콤이라기에는  에피소드들속에 삶의 진지한 의미가 담겨 있었기에

어떤 결말일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세경과 지훈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결말로 막을 내렸다.

그간 지붕킥의 커플들을 사랑했던 시청자들은 죽음이라는 결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열린 결말이라 떼쓰며, 죽은 것이 아니라는 주장들을 펼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그들은 분명히 죽은 것이다.

 

사이트에 지붕킥의 마지막 방송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막 본방송을 끝낸 시간즈음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보고 세경과 지훈의 죽음을 알수 있었다.

약간의 충격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결말이다.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도 슬픈 결말이었다.

사람들의 무거웠던 일상을 하이킥 한방에 날려 버려줄 것 같은 가벼운 시트콤의 결말마저

가벼웠다면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김병욱 감독은 그와 그의 작품에서 연기했던 배우들을 시청자들로 하여금 한방에 날려버리지 못하게 했다.

그동안 가벼운 이야기를 통해 삶의 무거웠던 시름을 잠시마나 잊게 해주고는

마지막에는 뒤통수 확실하게 치면서 그가 연출해낸 시트콤을 더욱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우리는 김병욱 감독이 날린 하이킥에 맞은 것이다.

시청자로서 배신감은 커녕 그는 훌륭한 연출자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결말 때문인지 큰딸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딸아! 지붕킥이 오늘 끝났는데, 세경과 지훈이 죽었다”고 전했다.

멀리서 듣고 있던 딸은 “뭐?”하며 놀란다.

 

마지막 장면에서 세경이 내뱉은 말들을 리얼하게 딸에게 전하고 있는데

문득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밀란 쿤데라 원작,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화한 “프라하의 봄”의 마지막 장면이 함께 떠올려졌었다.

 

데니엘 데이 루이스와 줄리에트 비노쉬가 연기했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

마을 축제에 가서 신나게 춤추며 놀다 트럭을 타고 돌아오던 길에서 테레사[줄리에트 비노쉬]는 환한 미소를 띄고는 “너무 행복하다”고 했고, 바로 옆에서 트럭을 운전하던 토마스[다니엘 데이 루이스] 또한 “행복하다”면서 그다음 장면은 하얗게 된다.

 

원작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영화에서는 자살이었다.

 

쏟아지는 빗속을 달리는 차안에서 지훈을 좋아했다는 것을 고백하며, 그간 가슴에만 담아놓았던 말들을 뱉어내고 난뒤 행복하다고 하는 세경,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시간이 멈추어졌으면 좋겠다고는 정지해버린 화면이 그영화와 너무 닮았다.

 

그럼 지훈의 자살?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니 억지는 아닌 것 같다.

 

한남자만을 사랑하는 테레사의 무거운 사랑과 여러 여자들과 쉽게 관계를 맺는 토마스의 가벼운 사랑이 만난다.

토마스의 가벼움에 고통스런 사랑을 하는 테레사,

토마스도 의사였다.

그리고 자신의 예술이 모든 것이었던 토마스의 여자 친구, 사비나.

그녀는 토마스와 육체적 관계는 갖지만 그들의 사랑은 우정에 가까우며, 절대로 토마스를 소유하려들지 않는다.

 

사비나를 거치고 다른 많은 여성들과의 관계를 맺으며 돌고돌아 테레사에게 안착하는 토마스,

테레사의 무거움과 토마스의 가벼움이 하나로 맞물려져 평온함으로 이어졌을때 그들은 함께 떠나게 된다.

 

삶에서 무거움과 가벼움은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맞물려 융합되는 것이리라

 

식모살이를 해야하는 세경의 무거운 삶과 지훈을 짝사랑해왔던 그녀, 마지막 차안에서 세경은 이야기한다.

“아저씨를 좋아하다 나를 돌아보니 부끄러웠고 비참했다”고, 그녀에게는 사랑도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중력에 의해 무거운 것은 흘러내리기 마련이다.

세경의 무거움이 흘러내려 가벼움이 되어 버린 순간 이야기는 끝이난다.

 

그녀가 흘러 내려버린 무거움을 그동안 가벼웠던 지훈이 받게 된다.

 

첫사랑의 실연으로 방황하고 꿈꾸었던 록커를 접고 현실적인 의사라는 직업을 택했던 지훈,

머리는 좋았지만 감성지수는 제로에 가까웠던 것으로 나오는 지훈은 세상이 녹록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그래서 의사라는 직업을 택하게 되었겠고, 그러면서 감성은 더욱더 죽이며 살았을 것이다.

 

정음과의 만남과 사랑도 그의 가벼움의 한 현상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지훈과의 사랑보다는 본인의 현실이 더 중요해 결별을 고한 정음은 사비나였다.

 

그렇게 토마스가 돌고 돌아 테레사에게 온것처럼 그렇게 지나온 그날 차안에서 지훈의 가벼움은

세경의 말들속에서 그동안 무의식속에 밀어놓았던 것들이 의식화되면서 무거워진다.

 

마음속 깊이 세경을 좋아했지만 불쌍한 처지의 그녀를 좋아하는것 조차 조심스러웠던 지훈은

사랑하는 감정을 본인, 자신도 모르게 더욱 깊이 파묻어 버렸을 것이다.

 

세경의 고백속에서 “뒤늦은 자각”을 한 지훈은 감당해내기에 너무 힘들었고, 참아낼수 없었기에

비가 쏟아지는 도로를 주의없이 운전하게 된다.

눈물 가득찬 눈으로 세경을 바라보던 지훈, 그는 그 순간 모든 것을 잃으면서 "자각",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면서, "자기"를 얻었다.

 

지붕킥에서 가장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은 지훈이었다. 

감독은 한번도 그를 세세하게 조명한 적이 없었다.

잘 알수 없는 인물같다. 

이건 어쩌면 마지막의 "뒤늦은 자각"을 위한 설정이 아니었을까?

 

삶은 단순하지 않다. 희극과 비극이 교차되고, 선과 악이 공존하며, 가벼움과 무거움이 함께 만나게 되고, 사람들의 기질과 성향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한면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나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바로 이 반대의 두가지들 속에 극대화 되어진 것들이 관계속에서 서로 깎여나가면서 중간지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세경이 무거운 삶을 살면서 그속에 내재해있던 가벼움, 그리고 지훈이 가벼운 삶을 살면서 품고 있었던 무거움,

겉으로 드러난 가벼움과 무거움은 단지 그렇게 보여지는것일 뿐이다.

 

이 두가지가 상쇄되어 하나로 완성되는 것으로 결말이 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는 것을 이세상은 참아낼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현실이 아닌 구성되어진 것들, 드라마나 영화, 이런 시트콤을 만드는 사람들이 부러운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이야기하면서 그것들을 본인의 문화적인

신념[?]대로 상징화시키고 극대화시킬수도 있다는 것이다.

 

등장 인물들을 죽이고 살리는 일은 작가나 감독 마음[?]에 달려있다.

물론 그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그것을 대하는 우리, 대중들은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은 그대로 받아들으면서

임의로 엮어진 한 쟝르, 픽션[허구]이라는 것도 생각해야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