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다가

인생은 아름다워, 어머니에게 축복하소서

파리아줌마 2010. 5. 4. 02:32

 

축복하소서                 

 

-지은이 박종형-

 

모든 정직한 생산자들을 축복하시되

평생 천직으로 알고 농사 지어온 밭에서

햇감자를 수확하며 갈퀴 손으로 웃음을 가린 채

그 소박한 행복마저 내보이기 수줍어하는

농부에게 축복하소서

 

장님이면서도 병약한 아내를 위해 장작을 패고

자전거를 타고 동리 구멍가게로 달려가 나무 탁자에

걸터 앉아 살가운 평생 이웃들과 소주잔을 나누면서

그게 자신이 사는 행복이라고 웃으며

동네 품앗이가 줄어들게 걱정이라 하는

냉혹한 삶에게 축복하소서

 

여린 손으로 어린 동생의 밥상을 차려놓고

빨래를 하며 연탄을 갈아도 눈물을 감추고

동생을 다독이며 어서 어서 자라 간호사 되겠다고

꿈꾸는 소녀 가장을 축복하소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왜 사람들이 그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몇편을 보고 알수 있었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에 재미까지 덧붙여 있으니 그녀가 쓴 이야기를 충분히 좋아할만하다.

 

아름다운 제주의 바다를 배경으로, 같은 땅에 몇발자국 차이로 큰아들집, 결혼못한 둘째,셋째 아들집, 결혼한 손녀집, 그리고 어머니의 초가집까지 옹기종기 4대가 모여사는 가족 이야기이다.

이제는 더이상 낯설지도 이상스럽지도 않은 재혼으로 구성된 가족 이야기에, 한평생 남편의 바람끼로 홀로 자식들 키우며 살아온 대쪽같은 성격의 어머니가 중심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섯 여자들과 수십명의 자식을 본 늙은 아버지는 어느날 조강지처옆에서 죽고 싶다며 집으로 돌아온다.

저지른 일이 있기에 조강지처는 무섭지만 자식들에게 아버지라는 이유로 파렴치하게 자리잡으려 한다.

 

조금도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이유로 거부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눈치만 보는 큰아들, 내쳐야된다고 하는 냉정한 둘째아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세째아들, 결국 도둑처럼 큰 아들집에 들어온 아버지를 머물게 하며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으려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들을 아주 재미있게 엮어내고 있다.

 

결국 아들집에 숨어살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들키게 되지만 어머니는 완강하게 아버지를 내치지 못한다.

어쨌든 큰 아들네에 있기 때문에 당신이 아침 저녁으로 얼굴 대할일은 없으니까.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의 마지막 아내로부터 아버지가 입던 옷가지들이 도착한다.

어머니는 그것을 풀어본다. 남루하기 짝이 없는 남편의 옷들을 뒤지며 어떤 대접을 받고 살았는지 알아버렸다.

그리고 궁시렁거리며 옷을 손으로 빨고 말려 다림질한다.

 

어머니는 속상했다. 주체할수 없는 바람끼로 당신 싫다 내팽개치고 이여자, 저여자 만나 자식까지 낳고 살았으면 제대로 대접이나 받고 살것이지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다는 증거물을 대하고는 속이 후련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 남편에 대한 원한이 너무 깊었기에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을 대하고 말았다. 그 인간이 얼마나 홀대받으며 살아왔는지.. 

 

평생 수모받으며 살아온 당신이건만 홀대받으며 살아온 남편 때문에 속상해하는 당신, 자신이 참 싫었을 것 같다.

죽을때까지 대면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남편이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치떨리는 남편인데 그의 초라한 옷가지들을 정리하고는 마루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상념에 젖는다.  

 

그리고는 아버지를 당신집으로 들이라고 며느리에게 통고한다. 놀라지만 기뻐하는 아들와 며느리. 그렇게 한편이 끝났었다.

화해와 용서가 이렇게 빨리, 쉽게될까 싶어 조금은 쌩뚱맞았다. 

가슴속 맺힌 응어리가 그렇게 풀어질수는 없는 일인데 아무튼,,

 

                   

 

일주일 지나 다음편을 보니, 조강지처가 받아준다는 소리에 들떠 아버지는 말끔히 면도하고 아침도 먹는둥 마는둥하고 고운빛

나비 넥타이까지 매고 어머니 집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거처하는 방은 얼씬도 할수 없고 마루에서 지내라는 소리였다.

내 자식들 아버지이고, 곧 환갑인 며느리 고생시키는 것 미안해서, 그리고 한때 남편이었다는 인간적인 의리로 밥해주고 빨래 정도는 해주겠지만 같은방에 지내는 것은 절대로 못하겠다는 이야기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들들, 며느리까지 난리가 났다. 그리고 큰 아들이 어머니에게와서 한다는 소리가 아버지에게 이런 "수모"를 주실수 있냐고 따진다. 무심하게도 아들은 "수모"란 단어를 내뱉어버렸다. 어머니는 그말에 기가 막힌다. 수모라면 한평생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받은 것인데. 어머니는 자식들의 성화에 "방이 작다"는 핑계를 댄다. 그리고는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절에 간다.

그사이 아들들은 방을 넓히기 위해 장롱을 마루로 옮겨놓는다. 절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그광경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같은 방에서 병풍을 가운데 치고 아버지와 따로 생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날밤 어머니는 가출했다.

어머니의 가출로 집안이 뒤집힌다.

가출한 어머니는 술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평소 즐겨불렀던 노래를 고개 떨군채 구슬프게 흥얼거리고 있다.

그리고 잠시 장면이 바뀌면서 큰아들의 둘째 아들과 며느리의 제자가  박종형님의 "축복하소서" 시를 낭독한다.

시를 듣고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길래 깜짝 놀랐다.

 

어머니의 갈등과는 다른 싯구절들인 것 같은데, 시에서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며,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행복감을 느끼며 사는 어머니의 모습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왠지 함께 연결되면서 사람 마음을 파고든다.

 

작가의 구성인지 연출자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나 같은 시청자를 사로잡기에는 좋은 설정이었다.

 

어머니의 힘든 마음을 보듬어주는 따스한 싯구절이었다. 자식들 때문에 어쩔수 없이 받아들인 남편이고, 당신이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받은 모욕과 멸시를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마음 깊은 구석에 이상스러이 박절하게 내치지도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듯한 주체할수 없는 상황에서 시 한편이 따스하게 극전체를 어우르면서 진한 감동을 주었다.

 

척박한 땅을 일구어 수확을 거두어낸 농부와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병약한 아내를 위해 장작을 패는 장님, 어린 동생들을 돌보아야되는 소녀 가장이 힘든 삶을 불평하지 않고 비관하지 않으며 그안에서 꿈을 품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려하기에 시인은 하늘에게 축복하기를 부탁한다. 그들에게 원망과 불평이 없었던 적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모든 것을 겪고 뛰어넘었기에 축복받을만한 것이겠지. 그들은 삶을 무척이나 사랑한 자들이다.

 

그들이 삶을 사랑했기에 극복할수 있었던것처럼 어머니도 곱디 고왔던 젊은시절 남편을 보았을때 가슴 설레던, 그 사랑했던 마음 하나만으로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낼수는 없을까? 자식들 때문이고, 홀대받으며 살아온 남편에 대한 인간적인 정을 떠나서 어머니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마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아시고 그 가느다란 끈하나를 부여잡을수 있었으면 싶다.

 

그것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어머니, 당신이 하셔야 되는 용서일 것이다.

 

하늘은 아무나 축복하지는 않는것 같다. 힘들고 지친 삶을 보듬어 안고 살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들을 축복하겠지?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들중의 하나, 하지만 나 자신를 위해서라도 해야되는게 용서겠지.

 

김수현 작가 특유의 필체로 시청자들에게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결국 어머니는 용서와 화해를 이루어내리라.  

"축복하소서"시는 용서와 화해를 예고하는 복선으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중에 작가는 "어머니에게 축복하소서"라는 뉘앙스를 남기며 극을 끝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