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 파리의 한국아줌마 이야기[2]

파리아줌마 2010. 5. 8. 21:21

52%가 혼외 출생

 

프랑스 저출산 극복의 또다른 원인으로 동거하는 커플들이 주저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다. 프랑스 신생아들의 52%가 혼외 출생이다. 결혼이라는 사회제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프랑스인들이 많다. 예전 남편 일관계로 잠시 만났던 어여쁜 프랑스 모델은 살아보지 않고 어떻게 결혼할수 있냐고 당당히 이야기했다. 한마디로 형식과 제도타파였다. 그들은 결혼하지 않고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면서 아이를 가지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한예로 2007년 대선에서 니콜라 사르코지와 대결했던 사회당의 세골렌 루와얄은 결혼하지 않고 네 자녀를 낳고 살았다. 그리고는 대선에서 떨어지고 난 뒤 사회당 당수였던 그녀의 동거인이자, 아이들 아버지인 프랑소와 홀랑드와는 여러가지 이유로 헤어졌다는 것.

 

이에 프랑스 정부는 1999년 pacs[pacte civil de solidaite], <민간연대계약제>라는 제도를 만들어 결혼하지 않은 커플에게도 결혼한 사람들과 동일한 세금공제와 연금, 보험 혜택을 주고 있다. 이러니 안낳고 배겨?

 

저출산 극복은 돌고 도는 세대의 사이클?

 

혹자는 프랑스의 출산률 증가는 이민자들이나 외국엄마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이에 기여한바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이 프랑스 출산률에 차지하는 비율은 통계학회 자료에 의하면 0,1%이다.

 

내 주변에 있는 세아이를 둔 가정들은 모두 프랑스인들이다.

나름 개인적으로 관찰한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둘째 아이가 만8살이다. 지금 15살인 큰아이때는 아이셋 가진 가정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유독 둘째아이 친구들의 가정은 아이가 셋되는 가정이 많다. 만8살인 아이 친구가 첫째아이인 가정들이다.

에스테르, 마리, 가스파르, 주스탱., 이 아이들은 모두 동생이 둘이다. 둘째 동생들 나이도 비슷하다. 만 2살정도로 이제 막 유모차에서 내려 자박자박 걸어다니고 있다. 이 엄마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니 모두 70년대 초반 출생들이다.

 

에스테르의 엄마, 까린은 나보다 3살 적은 70년생, 무남독녀 외동딸에 부모의 이혼까지 겪고 외롭게 자랐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심장질환으로 7번의 자연유산을 하고 첫아이 에스테르를 얻을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연년생으로 남자아이를 보았고, 세 번째 아눅까지 낳았다.

 

여기에서 프랑스의 세대간의 사이클을 볼수 있는데, 역사적인 사건을 이야기할수 있다.

1968년 5월 프랑스는 혁명을 겪었다. 1968년은 2차세계 대전이후 태어난 베이붐 세대들이 대학생이 되는 시점이었다. 당시 10년전에 비해 대학생 수는 10배가 증가했었다. 대학의 양적인 증가에 비해 질적인 면은 채워지지 못했고 대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혁명으로 번지게 되면서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에 대항한 항거로까지 발전되었다.

 

비록 성공한 혁명은 아니지만 가장 큰 수혜자는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학생이건 노동자들이건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5월 혁명은 프랑스 사회의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인간관계를 보다 평등한 인간관계로 바꾸어 놓는 계기로 작용했다. 68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여성의 지위상승과 여성운동이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인다. 여성운동가들의 저서가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이후 낙태와 피임을 합법화시키고, 의료보험의 대상이 되는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육아와 가사에 지친 엄마를 보며 자라났던 베이붐 세대였던 68년의 젊은이 여성들은 혁명이후 가정보다는 사회활동에 더 비중을 두게 되었다. 당연히 자녀수는 줄어들게 되며 그녀들의 자녀는 엄마의 사회생활을 위해 탁아소에서 온종일 지내야만 되었다. 그렇게 외롭게 자라났던 세대가 바로 지금 아이가 셋인 에스테르엄마, 마리엄마 세대들이다.

 

68혁명의 주역이었던 현재 70세, 80세인 프랑스 할머니들의 사고 방식은 진보적이다. 우리나라의 할머니들과는 달리 자녀를 많이 두는 것을 말린다. 그리고는 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딸에게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엄마의 사회진출로 희생양이 되어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그들의 자녀는 일도 좋지만 집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며 케잌만들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일 되려면 모든것들이 맞물려 돌아가기 마련이다. 이같은 사고방식이 프랑스의 저출산률을 끌어올리는데 일조한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돌고 도는 세대간의 사이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도 이 세대가 지나고 나면 다시 출산을 많이하는 세대가 올수 있냐는 생각이 들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비록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었기에 아이들을 많이 가지고 싶어했다손 치더라도 사회적인 제도가 뒷받침해주지 않았다면 갸스파르 엄마나 주스탱 엄마가 아이 셋을 생각할수 있었을까? 또 다시 사회제도 탓으로 돌리지 않을수 없다. 

 

여성과 아이는 힘있는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보호받아야할 대상들이다.

프랑스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출산률을 높이고자 애썼으면 이런 사회제도를 만들어낼수 있었겠으며 저출산을 해결할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출산문제는 사람의 존엄한 생명을 다루는 것이다. 모든 법적, 행정적 절차를 떠나 마음을 담지 않는다면 힘든 것이다.

두아이를 이곳에 출산하면서 느낀것은 프랑스인들은 아이와 산모를 진정으로 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진정성이 없다면 출산의 문제는 극복하기 힘들것이라고 감히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는 나라이다.

혹자는 사회제도적인 혜택만 믿고 사람들로 하여금 노력하게 하지 않고 의존적이 되게 한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사람의 문제이지. 그런 뒷받침으로 행복하게 잘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마치 아이가 물을 쏟았으면 잘 닦아주기보다는 다그쳐란 말로 들린다. 그래서 조심하게 만들어야 된다고, 그런다고 아이가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는 프랑스는 물 쏟은 아이 주변을 어떻게 하면 아이 몸과 옷이 젖지 않게 잘 닦아줄까를 생각하는 나라이다.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제도를 세우든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