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프랑스인과 뺨을 맞댈때

파리아줌마 2010. 5. 18. 21:59

프랑스인들은 친근한 사람에게 인사할때 뺨을 맞댄다.

서로 뺨을 맞대고 양쪽 뺨을 왔다갔다하며 입으로는 쪽~쪽~소리를 내는데, 그게 프랑스 인사법이다.

프랑스어로는 비쥬[bisou]라고 한다.

  

대구 출신의 무뚝뚝하고 살갑지 않은 내가 파리에 와서 이런 인사법을 보니 좋았다.

하지만 막상 하려니 영~~

예전에 어학을 하고 있을때 저녁 파티가 있어 친구집에 초대받아 가면 남녀 불문하고 참석한 사람들과 이런 인사를 해야만 되었다. 더군다나 저녁 파티라 왕복 두번을 오고가며 뺨을 맞대고 쪽쪽거리는 인사를 했다. 어색하기 이를때 없지만 어쩔수 없었다. 겸연쩍고 온몸에 닭살이 돋았지만 로마에 가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거니까. 

 

예전에 나를 언니라고 불렀던, 나와 별다름없이 무뚝뚝했던 부산 아가씨, 진이[가명]는 영화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로 왔다. 저나 나나 살갑지 않은 보리문디, 경상도 사람이라 파리생활을 이야기하다보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소심하고 남에게 속을 잘 내보이지 않는 아이였는데 어느날 "언니, 내가 파리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게 이 비쥬"라고 고백을 했다. 다른것은 다 견디겠는데 이것만큼은 못견디겠단다. 

 

이에 나는 "그렇나? 나도 그렇다."고 했고, 우리는 바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진이가 더욱 이해못하는 것은 한국사람들끼리도 비쥬로 인사하는 것이었다.   정말 적응이 안된다며 토로했다. 견디다 못한 진이는 어느날 학교 남학생이 친근하게 뺨을 맞대려고 다가오는데 팔을 뻗고 얼굴을 돌리면서 Non~~~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남학생이 얼마나 무안했을까?  그이후 남학생과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쉽게도 듣지 못했다. 아마 문화의 차이로 이해했을 것이다.

 

진이가 이야기한것들중에 기억나는게 있는데, 까페에서 20대 프랑스 남녀가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다.

서로 좋아서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난리였는데 나갈때는 동전한푼까지 정확하게 계산해서 각자 지불하고 나가더라는 것이다.

우리같은 경상도 여성들은 이해할수 없는 풍경이다. 예전 외로운 유학 생활에 가끔씩 진이와 만나 이야기 할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은 한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한국에서 씩씩하게 잘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선배 언니의 경우,  매일 보다시피하는 미국 남학생이랑 비쥬를 하다가 서로 뺨 맞대는 방향이 맞지 않아 입술을 스친 경우도

있다고 하니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비쥬로 인해 겪은 우스꽝스런 일화들이 어디 이정도뿐일까 싶다.

 

얼마전 글에서도 밝혔는데,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나온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이의 양뺨에 빨간색 줄이 죽죽그어져 있는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어디 다쳤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에게 비쥬를 받았다고 했다. 그날 딸은 선생님 생일선물로 초콜릿을 드렸고, 고마워한 선생님이 비쥬세례를 퍼부었던 것이다. 아이 양쪽 뺨의 빨간줄은 선생님 립스틱 자국이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유치원부터 초등학교를 거쳐 지금 중학교 3학년인 큰딸은 이를 잘 활용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딸은 아침에 학교가서 친구들 만나면, 안녕[salut]!하고 나서는 이 아이와 쪽쪽, 또 안녕!하고는 저아이와 쪽쪽, 한 대여섯명과는 이렇게 인사를 하고는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남학생들하고도 하냐고 물으니 가끔한다고 한다. 안경쓴 친구들은 안경다리들이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인사하려는 순간 재채기하는 친구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감기가 걸렸을때는 다가오는 친구에게 감기로 비쥬를 할수 없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고,, 딸에 의하면 그냥 말로 반가워하는것보다는 이렇게 서로 스킨쉽을 가지는게 좋다고 한다.

 

그이야기를 들으니 말로 인사하고 얼굴만 멀뚱멀뚱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보단 나을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딸은 프랑스 어른들에게도 고개를 약간 숙이며 인사하는 한국예절을 스스로 습득한 아이다. 어느날 동네 도서관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딸이 자기에게 이렇게 인사하더라고 일러주었다. 아저씨는 새로운 예절 문화를 대하고는 기분좋게 이야기했다. 이에 딸은 멀리서 "안녕하세요?<봉쥬르[bonjour]>하면 잘 안보이기 때문에 고개를 약간 숙여 본인이 인사하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 프랑스식 인사도 좋고 한국식 인사도 좋다는 것이다.

 

회사동료들간에, 그리고 같은 반 친구끼리 프랑스인들은 뺨을 맞대며 인사하고, 둘째 아이 경우처럼 선물을 받았을때도 감사함의 표시로 비쥬를 한다. 예전에 누군가가 그래서 프랑스가 향수가 발달된 것이라고 했다. 나름 일리있는 이야기다. 비쥬할때 향긋한 향기가 나면 기분이 좋다. 

 

딸아이가 친구집에 놀러갔을때도 그집 가족들과 돌아가면서 비쥬를 한다. 친근의 표시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일관계로 처음 프랑스인들을 만나면 비쥬보다는 악수를 한다. 남자 여자 구분없이 악수를 하는데, 몇년전 한국을 다니러갔을때 남편과 송구영신예배를 보고 목사님께 인사드리면서 악수를 하길래 나도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는데 목사님이 멈칫하시며 악수에 응해주셨다. 이상해서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는 남녀간 악수가 자연스럽지 않다. 잠시 착각한 것이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몹시 부끄럽다.

이곳 인사법에도 익숙하지 않으면서 한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튀게 된다. 이런걸 보면 한국에서나 프랑스에서나 이방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20년을 살고도 아직 <비쥬> 인사법에는 익숙하지 않은 한국아줌마다. 그렇다고 거부하지는 않지만 태생은 어쩔수 없는 한국인이다. 친근한 말한마디, 따뜻한 눈빛만으로 뺨 맞대는 것을 대신한다면 조금은 게으른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