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던 30일은 프랑스 어머니의 날이었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처럼 어버이 날로 아버지, 어머니, 즉 부모님 은혜에 함께 감사하는게 아니고 따로 어머니 날, 아버지 날, 그리고 할머니 날까지 공식적으로 정해 놓고 있다.
유래를 보자면, 1918년 프랑스 중부 지방도시인, 리옹에서 1차 세계대전시 남편과 아들을 잃은 미망인과 어머니들을 위한 날로 시작되어 1920년즈음에는 다가족들이 주로 기념하다가 1929년에 프랑스 정부에서 어머니 날을 공식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1년 비시 정부때 프랑스 달력에 명시되었으며, 대전이후 1950년 5월 24일 법안에 5월 마지막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하기로 했다.
얼마전부터 파리거리의 가게들은 <어머니 날> 이벤트로 쇼윈도우를 장식했고,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도 어여쁜 엄마와 귀여운 자녀를 모델로 온갖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어머니 날>이 다가오면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엄마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서 선사하고 있다. 지금은 중3인 큰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학교에서 준비한 선물로 인상깊었던 것이, 반 아이들이 각자 엄마를 그린 그림을 모아 앞치마를 만들어 준 것이 있었다. 너무 소중하고 아까워 잘 보관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앞치마 사용안한다고 섭섭해하길래 몇번하곤 했었다. 둘째 아이도 그동안 매년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준비한 선물을 해왔지만 이번만큼은 어느것보다 의미가 깊었다.
지난 금요일, 소풍을 갔다 오는 초등 2학년 둘째 아이 손에 예쁜 무늬가 있는 투명 비닐 포장지에 싸인 큼지막한게 들려있었다. 부피가 커서 엄마가 들려고 하니 손도 못대게 한다.
무엇인지 뻔히 알것 같은데 아이는 그래도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지 감추려고 한다. <눈가리고 아웅>식이지만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 모른척하고 함께 집에 왔다.
그리고는 그것을 집안 어느 구석에 감추었는지 몇일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일요일 아침 잠에서 깨자 마자 짠~하고는 내어놓는데 그날의 그 큼지막한 것이었다. 대충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어린 둘째가, <엄마의 날을 축하해> 라고 불어 한마디를 하고 내어놓는데, 고슴도치 엄마는 너무 좋아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의 표정이 지어졌다.
하트모양의 쿠션, 그리고 스치로폴에 분홍무늬 테잎을 붙인 바늘꽂이다.
얼마전 학교에서 바늘을 가지고 오라고 하기에 아이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치려나 싶었는데,
선물용 쿠션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하트모양의 박음질된 천을 마련해서는 까만색 테두리는 선생님이 붙이고 중간에 아이들이 십자수로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서>라는 글귀를 만들었다.
그런데 쿠션치고는 와시락 와시락~~소리가 좀 요란하다.
그래서 찍찍이를 뜯어보니 안은 솜이 아닌 조각 스치로폴이 넣어져 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땀한땀 엄마를 생각하며 수를 놓았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남자 아이들은 어떻게 했나?고 물으니 선생님이 많이 도와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학교에서 미처 못끝낸 십자수는 집에 가지고 가서 엄마 몰래해서 오라고 했는데, 딸은 나에게 들키지않고 감쪽같이 집에서 자수 놓아 가져갔다고 일요일 밤에 이야기한다. 엄마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 아이가 조용한 시간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서진아~ 뭐하고 있니? 하고 몇번을 외쳐 불렀던적이 있는데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 이층 침대에 올라가서 몰래 십자수를 놓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완벽하게 엄마에게 감추었다.
카드도 동봉되어있었다. 카드에 적힌 것은 싯구절이다.
나의 삶은 큰기쁨이예요.
내가 잘때,
내가 깨어있을때, 혹은 놀고 있을때.
모든 순간에 부드러운 요정이 나를 지키고 있어요.
그리고 나를 따뜻한 정성으로 감싸고 있어요.
이 경이로움은 나의 엄마예요.
요즘은 학년말이라 소풍 가고, 어머니 날 선물 준비하면서 학교에서 별로 공부하는 것 같지가 않다.
숙제도 거의 없다. 숙제라고 해봤자, 책읽기다.
8살 어린아이가 공부보다는 어머니의 날을 맞아 선생님과 함께 선물을 만드는 것은
부모에 대한 공경심을 키워줄뿐만 아니라 커가는 아이의 정서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올해 담임 선생님의 학과 프로그램은 아주 다양했다. 얼마전에는 바스티유 오페라로 학급 전체 인솔해서 독일 오페라를 보고 오기도 했었다. 오페라 가기전에 내용과 음악을 들어보고 사전 공부를 해서인지 딸아이는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날 여자아이들은 오페라 간다고 모두들 우아하게 치마를 입고 등교한 것이다. 무척 귀엽고 사랑스런 모습이었다. 딸아이도 작년 한국에서 사온 캉캉치마를 입고 갔었다.
그리고 유치원 마지막 학년인 3학년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알려주었다.
아심볼도, 미로, 모네의 작품을 아는 딸아이를 보고 어느날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미로의 그림 기법을 따라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도 했었다. 또한 중세의 유명한 타피스리 <리코르느 부인>의 6가지 조각과 그에 담긴 의미를 공부하고 와서는 타피스리가 있는 파리의 중세 박물관을 가보자고 졸라서 함께 방문한 적도 있었다. 열과 성의가 있는 선생님들의 좋은 프로그램들이었다.
올해 어머니날 선물에는 많이 감동받아 가정 통신공책에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간단한 메모라도 해야겠다.
얼마전 블로그를 통해 연락이된 진이가 성적에 쫓겨 아이들의 창의성이 발달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한탄하며, 더이상 우리나라가 프랑스의 교육을 부러워하지 않는 상황이 되기를 바란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해 왔다.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프랑스 초등 2학년의 한 프로그램을 올려보았다.
만 8살때는 공부보다는 나중에 본인의 삶, 공부 혹은 주어진 일에 충실할수 있는 인성을 길러주는게 더 중요할 때가 아닌가 싶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가까이 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는 파리의 한국아줌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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