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프랑스인과 뺨을 맞댈때"라는 글에서 진이[가명] 이야기를 했습니다.
뺨을 맞대는 프랑스식 인사법에 적응하기 힘들어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적었습니다.
진이랑은 예전 외로운 유학생 시절에 자주 만났습니다. 둘이 마음이 잘 통했습니다. 함께 이야기하다보면 다른이들과 쉽게 할수 없는 이야기들을 거부감없이 하곤했었지요. 프랑스 사람들 험담도 하고요,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 비난도 하곤했었지요. 진이를 만나면 참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남에게는 쉽게 속을 내보이지는 않는데 저에게는 본인 이야기를 잘했지요. 그리고 둘다 얄개 같은 기질이 있어 주로 낄낄 깔깔거리며 보냈던 시간들이 많았답니다.
진이 이야기를 쓰면서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2002년 진이가 파리에 다녀가면서 만난이후 연락이 없었어요.
그동안 사느라 바빴지요. 글을 쓰면서 옛생각이 나서 그리웠지만 잘 살고 있겠거니 하는 마음이었답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에 있었다면 찾으려고 했겠지만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무 생각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을 올린지 이틀만에 진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신기하게도 블로그를 통해서요. 목요일 오후 외출에서 돌아와서 블로그를 여는데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진이 이야기를 글로 쓰지 않았다면 그리 놀라지는 않았겠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 마치 어딘가에서 제 글을 보고 연결이 된것 같은데 그게 아니고 이곳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과 전화 통화하다가 그가 제 블로그를 알게되었다고 해서 바로 검색해보니 제 프로필 사진과 실명이 대문에 있으니 알았던거지요. 진이는 제가 자기 이야기를 쓴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더 신기하지요.
그래서 바로 전화연결이 되었어요. 꼭 이산가족 상봉 같습니다.ㅎㅎ
제가 본인 이야기를 쓴것과 이틀만에 연결된것을 말하니 진이도 무척 신기해했습니다.
둘이서 전화로 오랜시간 이야기했습니다. 파리에서 함께 한 추억거리들이 끊임없이 나오더군요.
제가 똥찌개를 끊여주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살던 집과 진이 학교가 가까워 스트레스로 시달릴때 제게 전화하면 바로 집으로 오라고 해서 똥찌개를 끓여주었다고 합니다. 저는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똥찌개는 참치와 김치를 함께 넣어 끓인찌개입니다. 프랑스 유학생들 사이에는 그것을 똥찌개라고 했지요. 참치가 불어로 thon입니다. 발음은 [똥]이라고 하지요. 불어와 한국어를 묘하게 결합시켜 만들어낸 말입니다.
몇달전 이와 관련된 글을 올리기도 했지요.
진이는 기억력이 좋아 하나하나 지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게 참 즐거웠답니다.
그리고 제가 올린 글, 뺨 맞대는 프랑스식 인사, 비쥬를 이야기하니,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하길래 폭소를 터트렸답니다.
저는 영화공부하는 진이 덕분에 영화를 많이 보았습니다.
알란 파커 감독의 영화에는 피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을 만든 폴란드 감독. 키슬로프스키를 함께 이야기했으며, 파리에서 옛날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함께 찾아다니기도 했답니다.
저에게는 영화 즐기기였지만 진이에게는 공부였지요.
기억나는게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졌던 영화, 레오 까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개봉을 하루 앞두고 오페라근처 영화관에서 당시 촉망받던 이 젊은 감독이 만든 세편의 영화가 밤새도록 상영되어 진이와 함께 보러갔습니다. <퐁네프의 연인들>, <나쁜 피>, <소년, 소녀를 만나다>는 당시 레오 까락스가 만든 세편의 영화인데요. 상영전 감독의 간단한 인삿말이 있었습니다. 허름한 잠바 차림으로 혼자 나와서는 마이크 잡고는 서서 간단히 인사하고 들어갔어요.
첫번째로 상영한 <퐁네프의 연인들>을 빼고는 다른 두편은 대충 자면서 보았어요. 그리고 새벽의 파리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오페라에서 걷기 시작해 루브르를 거쳐 센강변을 타고는 레알까지 가서는 밤새 영업하는 식당에서 감자튀김을 먹고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영화공부하는 진이라 한국 테이프를 볼수 있는 비디오 장치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90년대 초반이라, 인터넷도 없고. 한국비디오 가게도 없었기에 한국드라마를 보는 것은 불가능했는데 진이 덕분에 <여명의 눈동자>를 볼수 있었습니다. 진이 집에서 밤새도록 내리 그 드라마를 보고는 너무 많이 울어 그다음날 우울에 시달린적도 있었지요. ㅎㅎ
진이와 전화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마치 그와 함께 했던 스물너댓살로 돌아간듯했습니다.
그때의 말투와 웃음, 간간히 뱉어내는 숨소리까지 그대로였어요. 이럴때는 세월이 참 야속합니다. 어느덧 우리를 중년으로 옮겨놓았으니까요. 그렇다고 거스릴수는 없으니 그저 야속타, 야속타하고만 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연락 끊어진 사람을 만날수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것도 그와 관련된 글을 올리고 글을 통하지 않고 연락이 되었으니 신기하고도 감사한 일입니다. 마음이 서로 통했나봅니다. 혹 제가 하늘에게 이쁜짓을 한게 있었던 걸까요?ㅎㅎ
그러고 보니 블로그를 통해 얻은게 참 많습니다.
2년전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신 친정 아버지께서 아이들 모습 보려면 어디에 들어가면 되냐고 하시기에 만든 블로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이들 사진을 많이 올렸지요.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못보는 당신 외손녀들 크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항상 미더웠던 딸을 향한 아버지의 어떤 마음이 전달되었던 것일까요? 지금은 블로그로 연결된 일도 하고 있고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고, 이렇게 진이와 다시 연락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daum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방을 찾아주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리고요, 항상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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