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와 도미니크 드빌팽의 이야기"라고 쓰고 나니 무슨 동화에 나오는 두 남자 아이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알고 보면 살벌한 정치 세계에서 서로 극심하게 대립하는 관계인데요.
이야기는 2004년의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느날 수사검사에게 익명의 투서가 도착했습니다.
내용은 룩셈부르그에 있는 금융기관인, 클리어스트림에 비밀계좌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 정치인과 기업인 40명의 리스트였습니다. 그리고 관련된 돈은 1991년 프랑스가 대만에 프리깃함을 팔고 받은 뇌물 15억파운드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리스트에는 현재 프랑스 대통령인 사르코지의 이름이 들어있었습니다.
이에 검사는 허위제보라는 것을 확인했는데, 당시 외무부 장관으로 있었던 도미니크 드 빌팽은 프랑스 정보기관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비밀요원을 시켜서요.
2004년이면 사르코지는 경제부 장관으로 있을때였습니다. 시락크 전 대통령의 후임으로 우파진영에서 강력하게 지목되었던 도미니크 드 빌팽과 사르코지였습니다. 하지만 시락 전대통령은 드 빌팽이 대권을 이어받았으면 했나봅니다. 왜냐하면 사르코지는 국립 행정학교 출신도 아니거니와 드 빌팽처럼 관료로 발탁된 것이 아닌 선거로 올라온 정치인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끼리끼리만 노는 보수적인 정치세계에서는 문제가 되었나 봅니다. 특히 사르코지는 진취적인 성향이 강해 프랑스 기업인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시락 전대통령은 사르코지를 어떻게 해서든지 견제시키고 본인이 원하는 드 빌팽이 차기 대권을 이어받았으면 했겠지요.
사르코지와 드 빌팽
그런와중에 일어난 투서 사건입니다. 그 익명의 투서에 대해서도 시락과 드 빌팽의 합작이라는 설도 있었지요. 하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시락 전대통령은 드 빌팽에게 사르코지를 실각시키기 위한 표적 수사를 지시했다는 설이죠. 그게 사실이라면 드 빌팽의 목표는 차기대권에서 사르코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기에 비밀요원을 시켜 은밀한 수사를 진행시켰겠지요. 표적 수사 사실이 밝혀진게 2006년도였습니다. 당시 드빌팽은 총리로 사르코지는 내무부 장관으로 있을때였지요. 이 두사람이 소속된 프랑스 대중운동 연합당[UMP]은 다음해에 있을 대선에서 단일 후보를 내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드 빌팽의 정치적인 실책인 최초고용계약법
그런상태에서 드 빌팽은 2006년 1월 노동의 유연화를 위해 최초고용계약법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고용한지 2년이내에는 고용주가 이유없이 해고할 수 있다는 법안입니다.
이에 학교를 마치고 직업전선에 나서면 2년안에 이유없는 해고를 당할수 있다는데에 반발한 학생들은 가방을 내팽개치고 연일 시위대를 꾸렸고, 프랑스 노동조합들도 이 법안을 반대했습니다. 나라 전체가 파업으로 들끓었고, 학교들이 시위로 문을 닫았습니다.
당시 저는 소르본 대학 근처로 외출한적이 있었습니다. 항상 평화롭던 소르본 광장에 있는 까페들이 쑥대밭이 되어있는 것을 보고는 엄청 놀랐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폭력 행위보다는 강한 저항 의식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똘레랑스[관용]은 나와 다른 것을 틀리게 보지 않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는 또한 힘없고 약한 소수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힘가진 권력에 대항해서는 가차없습니다. 파손된 소르본 광장의 까페들을 보면서 느낀것은 <단호함>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온몸에 전율이 일더라고요. 당시 총리와 노동자, 공무원, 학생들간의 팔씨름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2달동안 계속되던 싸움은 결국은 민중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드 빌팽은 자신의 신념으로 인해 프랑스 사회를 분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최초고용계약법을 전면철회했습니다. 그는 tv에 나와 <이번 사태로 얻은 첫 교훈은 여러분들이 스스로 변화시켜야한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만든 법안을 관철시키지 못한 정치인이 한말치고는 꽤 멋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드빌팽의 정치생명은 당시로는 끝이었습니다. 2007년 대선에 나가지도 못했고, 정적이었던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대통령이 된 사르코지는 본인과 리스트에 있었던 나머지 40명을 선동해 드 빌팽을 음해죄로 고소하며 보복수사를 진행시켰습니다. 사르코지는 드 빌팽이 명단이 허위인줄 알고도 수사를 지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프랑스에서 전례없던 정치 스캔들인 <크리어스트림 사건>입니다.
시락 전대통령은 건드리지 않는다.
사르코지는 표적수사의 지시자였을 의혹이 있었던 시락 전대통령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시락 전대통령의 부패혐의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파리 시장 재직 시절에는 없는 사람 이름 하나 만들어 월급을 지불했는데, 그돈을 자신이 이끄는 공화국연합당의 비용으로 쓴 횡령혐의도 있다고 합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도 사르코지는 시락을 고소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대통령을 두번씩이나 한사람을 부패혐의로 고소하면 본인이 퇴임후에도 사법부의 심판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시락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정말 비교가 됩니다.
그리고 올 1월말 프랑스 형사 법원은 드 빌팽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드 빌팽은 수사를 지시하기는 했지만 사르코지를 음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음을 주장했거든요. 명단이 허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사르코지의 55세 생일이었답니다. 대통령은 항소하지 않겠다고 했고, 담당검사는 항소 의사를 밝혔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드 빌팽은 얼마전 보수 신당을 설립하면서 2012년 대권도전 의사를 강력히 시사했습니다. 사르코지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드 빌팽의 정치적 행보는 프랑스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프랑스에도 표적수사와 보복수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의 명예에 손상은 입었겠지만 큰
탈[?] 없이 지나갔습니다. 표적 수사로 전대통령을 잃고, 지난 4월 무죄 판결이 난 한명숙 전총리에 대한 또 다른 소환 소식을 들으며 프랑스의 예를 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많이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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