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아줌마의 건망증, 그 의식과 기억의 사이

파리아줌마 2010. 8. 4. 08:14

나이가 점점 더할수록 기억력이 떨어집니다.

그리 건망증이 있는 사람은 아닌데 신경쓸일이 있으면

꼭 해야할 일을 잊어버리기가 일수입니다.

그럴때는 둘째 아이가 상기시켜 주어서 엄마를 곤경에서 구해주곤 한답니다.

 

전업주부라 생활반경이 그리 넓지는 않지만 아이들 챙기고 집안의 소소한 일들에

잔잔한 신경을 쓰며 살다보니 눈은 침침해지고 하나 둘씩 느는 흰머리를  

보며 나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됩니다.

 

나이가 더할수록 기억력은 떨어지지만 이해력과 포용력은 넓어진다는데

그또한 갖추지 못한 것 같아 그저 세월이 속절없게만 느껴집니다.

 

장을 보기 위해 슈퍼에 갈때 필요한 물품들이 많을시에는 빠뜨리지 않기 위해

꼭 메모지에 기입을 해서 갑니다.

하지만 그리 많은 것들이 필요치 않을때는 아직도 기억력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머리에 하나하나 새겨가지고만 갑니다. 마치 어느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을 것처럼요.

 

슈퍼 이구석, 저구석을 돌며 필요한 물품들을 장바구니에 넣습니다.

그러다 어떤 날은 치즈와 버터있는 냉장 코너가 눈에 꽂힐때가 있습니다.

잠시 서서 쳐다봅니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쪽에는 필요한 것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러고는 자신있게 장을 봐서는 집으로 씩씩하게 옵니다.

물건들을 정리하는 순간에서야 아뿔싸~ 마가린을 사야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치즈 버터 코너가 눈에 잠시 꽂혔던 것입니다.

 

왠 꼼꼼한 프랑스인이 사야될 물건을 기입한 포스트 잇을 장바구니에 이렇게 붙여놓았더라고요.

바구니들 모아 놓은곳에서 처음보고는 누가 바구니 찜~ [?]해놓은줄 착각했답니다.ㅎㅎ 

 

 

이런 어설픈 장보기는 올봄내내 계속되었답니다.

어떤 때는 커피 코너가..또 어떤 때는 식기세제 코너에서 나도 모르게 잠시 머물고는 기억나는게 없어

그냥 돌아나와 집에 와서야 그쪽 코너에 필요한 물건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러고도 끈질기게 메모하지 않고 자신있게 집을 나서서 슈퍼로 향하게 됩니다.

하지만 메모한다고 해도 별수는 없습니다. 어떤 때는 메모한 종이를 집에 두고 나오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냥 잊어버리고 안사오면 되는데 왜 그 코너가 눈에 들어오고. 잠시 머물기도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의문이었답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이것이 바로 의식과 기억의 사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시덥잖은 아줌마 건망증에 의식까지 들먹여서 좀 뭣하지만 저로서는 깊이[?] 생각해본 일이라서요.

 

집에서 사야될 물건들을 생각하면서 의식화됩니다.

그런데 그 의식은 슈퍼로 향하는 동안 인간이 가진 본능인 망각[?]속으로 묻혀버리게 되지요.

그리고는 의식은 있되 기억이 없으니 그 코너가 빤히 눈에 들어오기만하고 생각나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그냥 나오게 되지요. 잠시 의식과 희미한 기억 사이에서 헤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기억이 떠오른다면 다행이겠지요.

하지만 그러기에는 슈퍼마켓이라는 곳이 너무 고요하지가 못합니다.^^

 

그러니 의식과 기억의 사이를 메꾸면 되는 일입니다.

그럴려면 슈퍼갈때 꼭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야겠지요.ㅎㅎ

 

아줌마들의 건망증이 다른 가족들을 불편하게는 하겠지요.

하지만 큰 탈없이 지나가는 이유는 분명 의식은 있다는 것입니다.

의식이 살아있기에 기억력 상실로 인한 피해는 좀 봐달라는,

의식의 꼬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아줌마의 변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