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17년만에 1박2일의 꿈같은 휴가

파리아줌마 2010. 8. 21. 08:52

17년만의 휴가, 올레!!!

 

올해로 결혼한지 17년이 되었습니다.

 

7월초, 여름방학이 되어 학교 안가고 집에 있던

어린 둘째가 "엄마는 바캉스가 없네"라고 합니다.

학교 안가고 집에 있는게 편하고 좋다보니

엄마 생각이 났나봅니다.

 

그질문이 하도 사랑스럽고 귀엽길래,

<그래, 엄마는 원래 바캉스 없는거야.

너희들 밥해주고 집안일해야 하는데 휴가 있으면 어떡하니?>

라고 대답은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뭔가 짠~해져옵니다.

 

지난 7월말 프랑스 지방으로 휴가를 떠날때도 취사가 되는

숙소를 택해서 전기밥솥부터 된장, 김치, 김등,

온갖 양념 다 챙겨서 갔지요.

일하는 워킹맘도 아닌데 휴가지가서 밥하는것쯤은

그저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나만의 휴가 같은 것은 별로 필요치도 않고, 아이들도 많이 자랐고,

가족과 함께 하는것이 좋았기에 별다른 불평불만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난주 수요일과 목요일, 1박2일동안 저에게 꿈같은 휴가가 주어졌습니다.

요구한 것은 아닙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졌답니다.

남편은 한국 가고 없고, 큰 아이가 놀다가 자고 오는 집에 작은 아이 또래의 둘째아이가

있어 작은 아이도 함께 가서 자고 오는 일이 생겼답니다.

 

한집에 자매둘다 맡기게 되어 죄송스러웠지만 아이들이 간절히 원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답니다.

그럼 수요일밤은 혼자 집에 있게되는 것입니다. 

 

결혼한이후 처음으로 만끽해보는 휴가였습니다. 

처음 든 생각은 <아! 내인생에 이런 날도 있구나>였습니다.

 

이곳에는 우리가족만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집에도 가고,

친척집 가서 지내기도 하면 좋을텐데,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항상 아이들과 함께 지내야 했습니다.

한국에 있다면, 바쁜일 있으면 시댁이나 친정에 아이들 맡길수도 있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많이 자라서 그런 아쉬움도 없어졌답니다. 

 

어쨌든 주어진 황금같은 시간을 어떻게 잘활용할까를 궁리했습니다.

그런데 그리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게 혼자 조용히 블로그 글 쓰면서 보낼 생각을 했습니다.

 

평상시 잔뜩 몰입해서 글을 쓰다보면 어린 둘째가 이런저런 질문이나, 요구를 해오면

리듬이 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날만큼은 그런 일없이 고요히 글을 쓸수 있겠다 싶었지요.

 

 

파리 외곽의 신도시인, La défense[라데팡스] 쇼핑센타에서 아이가 자고 올 집의 엄마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함께 점심먹고, 아이가 그엄마랑 함께 가는 모습을 보고는 혼자 이곳을 배회했습니다.

 

잠시 라테팡스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요, 고지대 빈민가를 말끔히 정비해 21세기 최첨단 신도시로 탈바꿈시킨

곳입니다. 라 데팡스에는 차들이 다니지 못합니다. 차량들은 도시밑으로 도로를 만들어 다니게 해놓았습니다.

 

보이는 신 개선문은요,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기념해서 1989년에 세워졌으며, 110미터의 높이입니다.

21세기형 도시공원이라는 주제로 36개국, 471개의 작품이 경합을 벌인 끝에 당선된 덴마크의 건축가,

슈프레켈젠의 작품입니다.

 

저어기 멀리 샹젤리제의 개선문이 보이지요? 신개선문과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하나의 흐름처럼 근대의 개선문과 현대의 신개선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라데팡스 설명은 이정도로만 하고요,

 

쇼핑센타를 다니다가 한쪽 구석에서 그날의 저만큼 자유로운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점심식사하고 남는 시간을 이용해 살사댄싱을 즐기는 프랑스 직장인들입니다.

양복 윗저고리를 벗어놓고는 오전의 무거웠던 업무를 잠시 떨쳐 버리려는듯 열심히 춤을 추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음악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약하게 틀어놓고는 춤은 신나게 춥니다.

무슨 모임인가 싶어서 바로 옆에 있는 식당 직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일주일에 두번 정도 모여서

살사댄싱을 즐기는데, 어떤 협회 모임도 아니고 오후 일과가 시작되기전에 자유롭게 와서

춤을 즐긴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잠시 샜습니다. 저의 휴가 이야기 계속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보내고 쇼핑센타 배회하다가 그냥 집으로 고고씽하기는 아까워서

그안에 있는 영화관에서 <인셉션>을 보았습니다.

 

<타이타닉> 이후로 처음본 디카프리오는 무척 반가웠습니다.

세월이 그때의 미소년을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 남성으로 변하게 했더군요.

하지만 영화는 별로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프랑스 사람들이 가볍게 박수를 치면서 웃으며 나가더군요.

저도 가볍게 웃고 나왔습니다. 올해 초 파리에서 본 <마더>가 더 좋았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날만큼은 손끝에 물을 묻히고 싶지 않아 저녁식사를 거를 작정을 했드랬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좀 허전하지는 않을까? 혼자 무섭지는 않을까?

어린 둘째가 걱정되고, 보고싶지 않을까? 등등,,, 

 

손끝에 물묻히고 싶지 않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배가 고파오기에

밥을 먹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한국 드라마 한편보고는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평상시 컴퓨터앞에서 앉아있으면 둘째가 무엇을 하고 있나 신경이 쓰입니다.

어떨때는 은근 미안해지기도 하고 눈치도 보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마음껏 앉아있었습니다.

 

영화, <인셉션>에 대한 리뷰도 찾아보고, 이런 저런것들 하다보니

외롭지도 허전하지도, 더군다나 무섭지도 않았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그다음날 오후 5시가 되어 아이들이 왔습니다.

아이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고 합니다.

 

별것은 없었지만, 17년만에 1박2일의 황금같은 휴가를 보내고 나니

1년은 너무 했겠고, 2,3년만에라도 이런 시간이 한번씩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자기 자리 찾아가게 되면 지난주의 쌈빡했던 휴가가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오겠지요.

그때는 어떤 휴가를 바라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