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테러로 얼룩졌던 1995년의 프랑스

파리아줌마 2010. 9. 11. 07:55

9.11테러가 파리에서 일어날뻔 했다고?

 

전세계를 경악시켰던 9.11테러가 일어난지 9년이 되었습니다.

비록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악몽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피해자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일부전문가들은 9.11 테러사건이 미국에 앞서

프랑스에서 발생할뻔했다고 합니다.

 

이는 1994년 GIA (Groupe islamique armé, 무장 이슬람 그룹)의

기습테러단이 에펠탑을 공격하기위해 알제리 행 비행기 ( AF 8969)를

우회시켰으나 미수에 끝난 것을 두고 말하는겁니다.

 

 

그로부터 일년 후인 1995년, 프랑스에서는 7월부터 10월까지 GIA가 주관한 테러가 무려 8건이나 있었고,

10명이 사망했으며, 200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프랑스가 이슬람 무장세력의 표적이 된 이유는 알제리 정권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희생이 있었던 것은 1995년 7월 25일 파리및 외곽을 통과하는 고속전철인 RER안에서 있었습니다.

기차가 노틀담 성당이 있는 saint-michel notre dame역에서 도착했을때 의자밑에 놓여진 주인없는 가방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8명이 사망하고 120명이 다쳤습니다.

 

그리고 8월 17일에는 개선문에 있는 휴지통에서 폭탄이 터져 30여명이 다쳤고,

8월26일에는 프랑스 지방도시인 리용에서 테제베 폭발을 겨냥한 폭탄이 기차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다행히 터지지 않아 바로 제거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여러차례 프랑스와 파리는 테러 주의보[Plan Vigipirate]속에 있었습니다.

2006년에는 오사마 빈 라덴의 오른팔인 Ayman al-Zawahiri는 빈 라덴에 대한 충성심을 재천명하면서 

"프랑스는 이슬람의 첫 번째 적"이라고 지명했으며, 유럽 특히 프랑스에 많이 분포해있는 GSPC (예언과 전투를 위한 근본주의 그룹)에게 테러활동을 촉구하는 비디오를 공개하면서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1998년 프랑스에서 월드컵이 개최되었을때는 이슬람 그룹의 요인들 백여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렇듯 프랑스인들에게는 9.11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특히 GSPC는 프랑스에서는 GIA의 한 분파행동파로써 여겨지며,

이 두 그룹은 프랑스의 옛 식민지였던 알제리에 연고를 가지는 것만큼,

이들 그룹이 프랑스를 잠입하는 것이 쉬운 반면,

프랑스측에서는 이들의 거점과 행동거지를 파악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입니다. 

 

1995년 테러를 지시한 알제리 GIA의 책임자인 Rachid Ramda는 당시 영국에 있었는데

프랑스측이 테러범 인도를 요구했지만 여러번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 관계도 악화되었고요,

 

그러다가 2005년 7월에 영국도 테러를 겪고난뒤 10월에 프랑스로 범인을 인도했습니다.

 2007년 그는 프랑스 법정에서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8월2일에서 9월15일까지 테러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에펠탑에서 순찰돌고 있는 군인들             

                                                                                                            사진 : AFP

 

1995년이후 테러의 위협과 함께한 파리의 삶  

 

1995년은 큰아이가 태어난 해입니다.

육아로 정신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던 와중에 파리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져 사람이 죽고 다쳤다고 합니다.

당시 파리는 테러의 공포속에 있었습니다.

 

개선문에서 휴지통이 폭발할때, 남편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집으로 전화한 남편은 떨리는 목소리로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휴지통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합니다.

막 태어난 아이가 옆에서 고물거리고 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아찔해지더군요.

 

그이후 파리의 모든 휴지통은 투명 비닐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없이 던져져있는 배낭, 가방, 상자를 보면 무조건 신고해야했습니다.

여행자들에게 파리는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절대로 가방과 떨어지지 말라고요>

잠시라도 가방을 혼자 두었다가는 바로 주위에 바리케이트가 쳐지고 자체폭발을 당하게 됩니다.

 

간혹 지하철을 타서 의자밑이나 어떤 공간에 주인없이 놓여있는 가방이라도 발견할때면

머리카락이 쭈뼛서는듯했습니다.

지하철 전광판에는 의심스러운 꾸러미 때문에 기차가 연착한다는 문구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리고 터무니 없는 거짓신고들도 많았습니다.

 

당시 파리 지하철 테러로 남편을 잃은 어떤 프랑스 여인의 사연을 잡지에서 읽은적이 있습니다.

그는 부상자였는데 여러번 수술을 거치면서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날 지하철을 타기전의 일상과 그와 함께 했던 이야기부터 죽음까지 담담하게 풀어놓은 글이었습니다.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의 삶이 커다란 시대의 상황에 맞물려 희생되는 것에 많이 슬펐습니다.

이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질곡의 역사를 거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요.

이념과 종교가 무기가 되어 사람을 해치는 일은 더이상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