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한국 아줌마가 목격한 프랑스의 똘레랑스

파리아줌마 2010. 10. 3. 09:28

프랑스의 똘레랑스 정신이란?

 
프랑스라고 하면 똘레랑스 정신을 이야기합니다.

똘레랑스[tolérance]란 다른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및

정치, 종교적 의견을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서

허용되는 자유로도 해석합니다.

 

첫 번째 뜻은 나와 남 사이의 관계 또는 다수와 소수 사이의 관계에서

나와 남을 동시에 존중하고 포용하는 내용을 품고 있다면,

두 번째는 권력에 대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의지를 품고 있습니다. 이는 저항정신으로 나올수 있을 것입니다. 

 

똘레랑스 정신을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내가 존중받을수 있다는 것으로,

1950년대부터 타인에 대해 열린 사고로 정의되어 왔다고 합니다.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이런 똘레랑스 정신은 필요할 것입니다. 남을 존중하는데서 오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수 있지 않을까요?

 

대인관계에서 똘레랑스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할수 없어요,

하지만 존중하기에 틀린게 아니라 다를뿐>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인의 유순함의 원인은 똘레랑스?

 

이곳에 도착해 처음 본 프랑스인들의 모습은 참 어질고 순한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때가 20여년전이니 미테랑 대통령 시대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을때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탄탄한 사회복지 혜택으로 이른바, 먹고 사는게 큰 문제가 없었고,

오로지 휴가를 위해 일하는 프랑스인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많이 일해서 돈을 더 벌면 세금을 그만큼 더 많이 내어야하는 사회주의 경제 구조였기에 처절한 경쟁도 없고,

아득바득 살아남으려고 하지 않아도 회사가, 정부가 알아서 다 챙겨주었겠지요.

그러기에 기본적으로 삶에 필요한 것들이 해결된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똘레랑스 정신이 실질적인 사회구조의 안정을 가져다 주었는지,

사회복지가 똘레랑스 정신을 가져다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질과 정신이 연관성이 없지 않듯이 이 둘은 서로 얽히고 섥힌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체국이니 관공서에 가봐도 길게 줄을 선 사람들중에는 짜증내거나,

급하게 동동 거리는 사람하나 없이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한국의 <빨리빨리>의 삶을 보다온 저에게는 인상적이었답니다. 

 

<패션의 도시, 파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검소한 차림의 파리시민들이 우체국 볼일을 보기 위해

긴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는 사회주의의 전형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유순한 모습에는 남과 내가 다른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바득바득 내 의견만을 관철시키려는

굳센[?] 의지가 돋보이지 않아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런 이들은 눈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기에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그러기에 교통파업의 불편함속에서도 어깨 한번 으쓱하고는 말겠지요.    

 

조그마한 행사하나 앞두고도 회의하기를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은 회의중에서 얼토당치도 않는 질문에도

성의껏 대답하더라고요. 개인적인 생각에 저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을듯한데 왜 물어서는 시간을 끌까? 

싶은데도, 어느누구 하나 이상한 표정 짓는 사람없습니다. 어떨때는 <바보들의 행진> 같아 보일때도 있답니다.

 

하지만 그건 그사람의 의문점이니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궁금증을 풀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남도 알고 있어야된다는 것은 억지고, 강요겠지요.?

 

그리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이들에게도 옳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똘레랑스로 다양성을 인정하다보면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날수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인간들이 여러 생각들을 하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상황에 따라 적당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사고를 넓힐수 있고, 삶의 유연성을 가질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것입니다.

 

90년대초 미테랑 대통령의 숨겨진 딸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충격적일수 있지요. 더군다나 대통령이,,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이를 폭로한 잡지사를 향해 비난을 퍼붇더군요. 대통령의 사생활 침해라고요.

당시 르몽드지는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기사를 싣어 상황을 평정해버렸다고 합니다.

 

똘레랑스는 때로는 강한 저항정신으로

 

존중받기 위해 존중한다를 역설적으로 보자면 존중받지 못한다면 존중하지 않는다가 됩니다. 

너무 단순한 비약같습니까?^^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나는 어떻게든 그를 존중해야할까요?

무엇을 위해서요? 무조건 좋은 사람이란 소리 듣기 위해서? 이는 위선과 가식일뿐입니다.

그건 똘레랑스 정신과 어긋나는 것입니다.

 

존중을 중요시 여기고 강조하며 살아온 사람이 존중을 못느꼈을때 가지는 것은 저항정신일것입니다.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프랑스 사회에서는 강자, 즉 어떤 단체나, 정부가 행하는 일이 부당하다 싶으면

약자, 즉 시민들이 연대한 강한 저항정신이 살아납니다.

 

2006년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총리가 최초고용계약법이 제정했는데,

학생, 노동자들의 강한 반발로 철회했던 일은 프랑스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받은

강하고도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요즘도 연금개혁안에 대한 반대 시위와 파업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정치인들이 괜찮아서 이만큼 사는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의 선조때부터 깨어있는 시민의식과 저항정신 덕분입니다. 

파업을 하지않고, 시위에 참가하지 않아도 아닌것을 보고는 저항하는 정신,

그정신이 프랑스 사회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또한 프랑스 정치인들을 긴장하게 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똘레랑스의 모순도 없지는 않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며 많은 외국인을 받아들여 자국민과 같은 복지혜택을 주었지만 

프랑스는 그들을 통합하는데 실패함으로써  2005년 파리외곽지역의 이주민들의 불평불만이

폭동으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이후 외국인들에 대한 행정정책들이 강화되었고, 올 여름내내 문제시 되었던 루마니아 집시들을 추방하면서

프랑스 정부는 <똘레랑스 제로>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남을 존중함으로 내가 존중받을수 있다는 똘레랑스 정신은 프랑스를 떠나서라도

우리들의 삶에 적용하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