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식

아직도 계속되는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파리아줌마 2010. 10. 28. 07:56

아직도 계속되는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프랑스는 1940년부터 44년까지 독일나치의 점령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방이 되고난이후 4년동안 나라를 빼앗긴

치욕을 씻기위해 나치부역자들을 철저히 처단했습니다.

 

이용우씨의 저서,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에 의하면,

처단의 60%는 화가난 군중들에 의해 초법적인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40%가 법의 절차를 거처 처벌되었다고 합니다.

 

독일군인과 관계를 맺은 프랑스 여성들,

2만여명이 삭발을 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2차대전이후 프랑스가

민족반역자 처벌에 본보기가 되었지만, 네델란드,벨기에,노르웨이등에서

행해진 단죄에 비하면 그리 큰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100,000명당 프랑스가 94명인데 반해 네덜란드는 419명 벨기에는 596명,

노르웨이 633명으로, 노르웨이가 가장 엄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와 덴마크 3국은 소급입법과

더불어 그동안 금지했던 사형제를 재도입하여 나치부역자를 처형했다고요.

 

제가 파리에 있었던 90년대, 나치부역자 재판이 사회이슈화 되었습니다.

<모리스 파퐁>이라고 아직 이름이 기억납니다.

당시 언론들의 보도를 보고는 <아직까지 이런 재판있구나> 싶었습니다.

 

모리스 파퐁은 1996년 체포돼 3년 뒤 1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나치에 협력하는 프랑스 비시정부에서 관료를 지낸 파퐁은 해방뒤에도

파리 경찰국장까지 지냈습니다. 그는 체포된 뒤 나치협력 혐의에 대해 자신도 레지스탕스였으며,

당시 공직에 남아있는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태인을 강제수용소에 보내도록 명령한 문서에 서명한 사실이

민간단체의 추적으로 밝혀지자 그는 더이상 용서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에는 나치에 협력한 언론사들에게도 단호했습니다.

 

1944년 9월 드골정부는 <나치에 순종한 언론사의 발행 금지>,

<신문 소유주나 사장에 대한 재판>, <점령기간 발행한 신문 제호의 사용 금지> 등을 규정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파리 해방 이후 900여개 신문·잡지 가운데 649개가 폐간되거나 재산을 몰수당했다고요.

 

나치에 협력한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개인적으로 철저히 응징했다고 합니다.

로베르 브라지야크는 프랑수아 모리아크 등 레지스탕스 지식인들마저 사면을 원했던 천재작가였지만,

드골이 진정을 거부함으로써 결국 사형대에 올랐습니다.

나치협력 지식인들에 대한 드골 정부의 청산 의지는 그만큼 단호했던 것입니다.

 

비시정부의 원수였던 페탕의 초상화가 시골마을 시청에? 

 

화요일[26일] 프랑스 서북부 지방인 caen행정법원은 calvados지역의 작은 마을인,
Gonneville-sur-mer의 시청에 페탕의 초상화를 떼어낼 것을 명령했습니다.

 

필립 페탕은 나치에 협력했던 프랑스 비시정부의 원수였는데,

1945년 8월15일 프랑스 최고법정으로부터 국가반역죄로 사형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의 초상화가 인구 600명 정도되는 시골마을 시위원실에 걸려있는 것을

올해 초 결혼식을 위해 온 어떤 시민에게 발견되어 신고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지사가 초상화를 내리라는 서한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거부해서 법정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시위원 회의에서 초상화 떼내기를 거부하는 결정을 했다>고 하는데,

시위원 회의는 있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1871년부터 프랑스의 국가 원수들의 초상화가 있던 방일뿐이고,

페탕에 대한 어떠한 상징적인 의미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에 프랑스 역사가들은 공화국의 역사에서 지워진 사람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는 것에 경악했었고,

시장을 상대로 소송을 한 <인종차별과 유태인배척주의 반대연합>의 변호사는

<시장은 유태인을 배척한게 아니고 법을 어긴것>이라고 했습니다.

 

프랑스가 나치협력자 10만명을 총살시킨 이유에 대해 프랑스 역사학자들은

"민족반역자들을 살려줄경우 그들은 나름의 핑계논리를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할것이고

이것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주게 된다" 고요.

 

과거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바로 잡아가려는 노력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야지만 그것이 교훈이 될수 있겠지요.

교훈이 되어진 잘못된 과거는 더 이상 치욕적이지만은 않겠지요.

그러기에 과거사 청산은 이루어져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