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한국인이 바라본 프랑스 정치인들

파리아줌마 2010. 12. 13. 10:32

한국인이 바라본 프랑스 정치인들

 

저는 파리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보같은 소리지만 이곳에서 오래살아 문화와 풍습에

익숙하다손 치더라도[그렇지도 못하지만] 절대로 프랑스인이

될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살면서 한국인으로서 느꼈던것,

혹은 일화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리다가,

<프랑스에는 이런 일이 있었더라>정도의 프랑스 소식을 블로그에

올리며 단순한 정보를 전할때는 솔직히 글쓰기가 재미없고,

지겨워지더군요. 그런데 어떨때는 개인적인 생각보다는

이런 글을 쓰는게 편할때도 있습니다.

 

글은 쓰는 사람이 즐겁지 않다면 읽는 사람도 별흥미를 느끼지 못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에 따라 필요하면, 혹은 마음이 동하면 단순한 프랑스 소식을 전할때도

있지만, 이는 또한 한국인들의 관심을 끌수있는 화제들이어야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이라든지, 무상급식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

상태에서 프랑스의 학교 급식형태는 어떤까? 같은 것들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네티즌들은 블로그에 올린 프랑스 소식에 크게 관심갖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흔히들 글에 대해 객관성과 편협성을 이야기하는데요.

그 구분과 기준은 무엇인지 의심스럽더군요.

1인 미디어라고 불리는 블로그의 글은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손치더라도 개인적인 관점일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인에게 읽혀진다는 것은 감안하고 글을 써야겠지요.

 

어떤 사실에 대해서는 올바른 정보와 객관성을 가져야겠고,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할때는

단정짓기보다는 여지를 남겨야될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해야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티끌잡기 좋아하는 이들의 댓글을 대할때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까칠한 댓글에도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해지더군요.

하지만 이제는 까칠해도 들을 말은 듣고, 비논리를 논리라고 내세우며

말도 안되는 글을 보면 받아쳐주기도 하고, 욕하고자 덤벼들면 바로 지워버립니다.

이제는 이렇게 정리할수 있어 아주 좋습니다.

개인 블로그의 글은 불특정 다수인을 충족시킬수 없습니다.  

 

저는 한국인으로서 프랑스를 바라볼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다소 주관적입니다.

하지만 이는 또한 개인 블로거로서 누릴수 있는 권리라면 권리입니다.

 

이세상의 모든 현상과 삶에 일어나는 것들은 내중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이기주의가 아닌 그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혹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중심입니다.

그러기에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이사회를 바라봅니다.

 

국민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 정치인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들이고, 프랑스에도 문제 많은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이렇게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이곳에서 들었던 당시, 시락 전 대통령의 인기가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사르코지 정부에 실망한 프랑스인들의 노스탈지 현상으로 시락에게 관심이 가져졌고,

그는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헌법위원회 회장을 맡으며, 본인재단을 만들어 활발한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을때였습니다.

 

역사, 정치, 문화가 다른 프랑스와 한국을 비교한 일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저에게는  자연적으로 비교가 될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두 나라의 대조적인 모습에 많이 씁쓸했습니다.

 

지난주 수요일 파리와 외곽지역에 느닷없는[?]폭설이 내렸습니다.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 파리였기에 시민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당황했지요.

그런데 오늘 르몽드지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피용 총리에게 닥친 폭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폭설과 함께 한파가 닥친 날 있었던 일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제설장치를 빨리 가동시키지 못해 마비현상을 일으킨 지난 수요일, 피용총리가

일기예보 탓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난국을 평정해야될 총리가 <내탓 아니고, 다른 사람 탓이야>를

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귀가하지 못할 정도의 눈이 내렸는데

내무부 장관은 그리<혼란>스럽지는 않다고 한것입니다.

 

그래서 르몽드지 기자는 <여는 것보다는 닫는게 나을수도 있다>는 내용으로 글을 시작하더라고요.

함부로 이야기한 총리와 내무부 장관의 입을 상징한 글이었습니다.

 

15센티의 눈이 쌓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폭설에 총리까지 나서서, 비록 무책임한 발언이었지만

시민들의 일상에 관심가지는게 저에게는 조금 신기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예기치 못한 폭설이 오면 국무총리가 나서서 왈가불가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더군다가 지난주 우리나라 국회에서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가운데 일어났던 폭력소식을

들었던지라 저에게는 비교가 될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어이없고, 황당하니 화보다는 너털 웃음이 나더라고요.

 

어쨌든 이상한 소리는 했지만 관심은 가진거지요.

이럴때 하는 소리가 <그나마>라는게 있습니다. 불행중 다행이라는 뜻이라 그리 반가운 표현은 아닙니다만

살다보니 <그정도>보다는 더 자주 쓰는것 같습니다.

 

몇달전 파리외곽지역에서 조깅하던 20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성범죄자를 풀어준 것에 책임이 있는 법무부 장관과 나라의 치안을 허술하게 관리한 내무부 장관이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프랑스 네티즌들은 미디어 플레어한다고 비난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 성폭행 희생자 장례식장에 장관이 참석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기에

또한 신기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사르코지 대통령은 같은 범인에게 당한 희생자와 사망한 희생자의 유족을 엘리제 궁으로 초대해

위로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내나라 한국에도 있는 일이라면 별관심 가져지지 않겠지요. 저에게는 엄연히 비교될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이 그나마 믿고 뽑은 대통령과 혈세로 월급받는 정치인라면 적어도, 이상한 소리해서 비난은 받을지언정

이상기후로 인해 불편해하고 있고, 범죄로 인해 희생된 국민에게 관심은 가져야되는것 아니겠습니까?

국회에서 싸움질하기보다는요.

 

프랑스의 좋은 점을 말하면 사대주의 운운하는 이들이 있는데요. 사대주의는 그럴때 쓰는 용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대주의는 주체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한국인임을 잊어버릴만큼 프랑스가 좋지는 않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곳이 제도적, 의식적인 면에서 좋은것이 많습니다.

프랑스라서가 아니고요 비교적 인간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곳이 프랑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