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한국사회에 노블레스 오블리쥐를 강조해야되는 이유

파리아줌마 2010. 12. 21. 10:45

노블레스 오블리쥐 정신이란?

 

우리나라에서 프랑스의 똘레랑스 정신 다음으로 

요즘 자주 등장하는게 노블레스 오블리쥐[Noblesse Oblige]입니다.

<귀족의 의무>라는 뜻인데요,

 

원래 노블리스[noblesse]는 "닭의 벼슬"을 의미하고,

오블리쥐[oblige]는 "달걀의 노른자"를 뜻하는 것으로,

닭의 사명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귀족 신분만큼

의무를 다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노블레스오블리제>라는 말이 나온 기원을 보자면,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지방도시, 깔레가 영국군에게 포위당하게 됩니다. 

깔레는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결국은 항복하게 되면서, 에드워드 3세 영국왕에게 자비를 구하는 

항복사절단이 파견됩니다. 왕은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한다며,

도시의 대표 6명을 처형하겠다>고 합니다.

 

이에 깔레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되는지 논의했습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깔레시의 최고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atche de St Pierre]가

처형을 자처했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이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임신한 왕비의 간청으로 영국왕은 깔레의 귀족 6명의 희생정신에 감동하여 살려주게 되었답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쥐는 어느 한 국가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조건으로 볼수 있습니다.

국가의 지도층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쥐를 갖추어 힘을 제대로 발휘할 때

그 국가는 융성했고, 정신적 축이 힘을 잃을 때 국가는 멸망의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로마 귀족의 절제된 행동과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모습은 평민들에게 귀감이 되어 국가를 지탱하는데 초석이

되었고, 그들은 전쟁이 일어나자 국가에 사재를 헌납하고 솔선수범하여 전장에 나가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때는 영국의 왕자 앤드류는 헬기 조종사로 전쟁에 참여하여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죽을수도 있다는 지도층의 책임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요즘 프랑스에서 똘레랑스라는 말은 간혹 쓰여도 노블레스 오블리쥐는 좀처럼 쓰이지 않습니다.

관련 예화가 있나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1949년에 발표된 영화 타이틀로만 나오더라고요.

 

이미 프랑스 사회에서 귀족이라는 용어는 혁명이후 없어져 버렸고,

물론 이곳도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특권층의 도덕적 의무는 별도록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쥐는 특권층의 누림만 있고, 의무가 없는 한국사회에서 귀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징적으로 쓰일수밖에 없고, 또한 강조될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본을 보인 분들이 있습니다. 

조선 정조 당시 흉년으로 인한 기근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던 제주도 사람들을 위해 전 재산으로 쌀을 사서

나누어준 거상 김만덕, 군수업으로 번 막대한 재산을 독립운동에 대부분 사용한 최재형,

집안의 노비를 해방하고 민족적 자립을 위한 무장투쟁의 선봉에 서는 동시에 국가의 미래를 위한 교육사업도

활발히 펼친 김좌진, <백리안에 굶는이가 없게 하라>는 신념을 사회복지로 실천하여 민중들의 생존권투쟁이

치열했던 19세기에도 화를 입지 않은 경주 최부잣집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쥐를 실천한 역사적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 특권층은 병역기피와 탈세, 그리고 최근 이마트 피자와 통큰치킨으로 영세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피자와 치킨 사업은 직장 잃은 가장들이 가족을 부양할 목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조여오는 거대기업의 횡포에

분노하지않을수 없습니다.

 

똘레랑스와 노블레스 오블리쥐가 함께 만나면 모순이 됩니다.

일단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똘레랑스 정신으로 귀족의 의무를 이야기할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깔레의 귀족들도 스스로 목숨을 걸고 나선것이지 누군가에 의해 강요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쥐는 더욱 빛을 발하여 오늘날까지 그정신이 이어오고 있는것이겠지요.

 

하지만 말이 <의무>이지 그안에는 <존경받을만한 être digne>과 <명예, 신의 faire honneur>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존경받을만하고 명예를 지켜나가는 이른바, <귀족의 의무>를 실천할수 있게 해야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듭니다. 이는 또한 특권층이 아닌 이들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런지요?

무엇을 위한? 내 나라가 건강해지기 위해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