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프랑스도 우리같은 과정이 있었더라

파리아줌마 2010. 12. 23. 10:39

프랑스도 우리같은 과정이 있었더라

 

우리는 흔히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보고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것만 보겠다는것이겠지요.

그리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러워하는 모습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것일까요? 조금은 마음의 눈으로 사람을,

그리고 사회현상을 살펴보고 싶어지곤 합니다.

이제는 만만치 않은 세월의 무게가 판단보다는 이해의 폭을 넓히며,

지혜로워지라고 꾸짖는것 같습니다. 

 

이해할수 없는 행동과 말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부러워만 했던 결과에는

힘겹게 치러낸 고통의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20여년 프랑스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많은 사회제도적인 혜택을 받았습니다.

특히 결혼하고 아이들의 출산과 육아, 교육을 접하면서 놀랐던적이 좀 있습니다.

 

학생신분으로 있었던 90년대말에 재무부 장관 싸인이 있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나라가 흑자가 나서 그때부터 저소득층의 주거세를 감면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만약 그해에 이미 주거세를 냈다면 환불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교적 현금이 잘돌지 않는 프랑스 사회입니다.

대부분 수표나 신용카드로 지불하기에 돈은 흔적을 남깁니다. 검은 돈이 돌기 힘듭니다.

요즘 공과금은 수표나 카드없이는 지불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비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90년대에 장관이 본인의 위치를 이용해 서민주택을 헐값에 측근에게 분양해주었다고 합니다.

뉴스에서 떠드는 관련 비리액수는 몇백만원선이었습니다.

당시 <참~ 소심하게도 해드셨군>싶었습니다.

 

예전 90년대 프랑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시락과 사르코지 대통령의 불법 정치자금 이야기는 요즘 자주 대두되고 있고,

2005년 파리 외곽지역 소요사태는 똘레랑스의 헛점을 드러내준 일이었습니다.

 

힘겨웠던 과정

 

세계 역사를 볼때 국가간보다는 계층의 갈등이 더욱 첨예화되면서, 혁명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사회변화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그리고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관계의 갈등은

이제까지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프랑스는 이미 18세기에 혁명을 거치며 왕정을 무너뜨렸고,

19세기의 파리꼬뮨은 시민과 노동자가 주축이 되어 혁명적 노동정권인 꼬뮨[Commune]을 세워

정부에 대항해 몽마르뜨르 언덕에서 피의 시가전을 벌였으며,

20세기에는 68혁명을 통해 봉건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대학이 평준화 되었고, 투명인간처럼 지내던 소수자들의 운동의 수면위로 떠올랐으며,

여성의 사회진출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피임과 낙태가 합법화되었습니다.

 

파리꼬뮨과 68 혁명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이후 프랑스 사회에 미친 영향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파리꼬뮨의 역사적인 의의로는 제3공화정 수립에 기여한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혹자는 파리꼬뮨을 우리나라의 5.18과 같은 선상으로 보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시민과 정부군의 시가전이라는 양상에서는 그럴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고, 프랑스는 심한 몸살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룩한 오늘날의 프랑스 사회입니다. 단지 낭만의 파리는 여행객들의 전유물일뿐입니다.

화가들이 이젤을 놓고 한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고, 파리를 찾는 전세계인들이 꼭 한번은 들르는

몽마르뜨르 언덕은 백여년전 시민과 정부군과의 치열한 총격전이 있었던 곳입니다. 

또한 운치있는 소르본 광장은 68년 교육의 불평등에 대항한 대학생들이 피를 흘린곳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프랑스인들이 누리고 있고, 외국인에게 조차 혜택을 주고 있는 사회제도들은

그냥 얻어진것은 아니더라고요.

 

획득한 결과, 그리고 또다른 과정

 

하지만 혜택이 있다고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저출산을 프랑스는 이미 극복해서 유럽에서 아기 챔피온이 되었습니다.

동거커플들에게도 결혼한 부부와 같은 혜택을 주고, 임신 5개월부터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등으로

프랑스는 저출산을 극복할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또다른 문제가 없을까요? 지난봄 프랑스의 탁아소 보모들이 아기돌보기를 거부하고,

머리에는 공갈 젖꼭지를 달고 거리로 시위하러 나왔습니다.

 

저출산 극복으로 아기가 많아지게 됨으로써 보모가 담당해야되는 아이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기들이 닭장의 닭들이 아니라"며 데모를 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렇듯 한쪽이 해결되면 또다른 한쪽에 문제가 생겨날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함께 방법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결과를 보며 과정을 유추할수있는것처럼, 해결만이 능사가 아니고 또 다른쪽의 문제야기도

생각해야될것입니다.

 

먼저 겪었기에 앞서가는 프랑스

 

기득권을 가진자들은 사회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파리꼬뮨의 시민과 노동자들이 이념에 사로잡혀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인게 아닌,

프랑스가 프러시아군에게 항복하는데에 맞선것입니다.

그리고 그옛날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쳐들어간 시민들은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사회변혁의 주체들입니다. 

문제를 외면하거나, 덮지 않고 수면위로 떠올려서 해결하기 위해 큰 힘을 향해 싸운이들입니다.

 

흔히들 큰힘을 향해 대항하는것을 보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표현을 쓰곤 하지요.

너무 막막하고 이겨낼수 없을듯합니다.

 

하지만 계란의 황성분은 바위를 조금씩 녹여낸다는 것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바위가 깎이려면 수많은 시간이 흘려야겠지요. 하지만 바위치기는 멈추지 말아야될것입니다.

 

프랑스가 지난날 수많은 고통의 시간을 거쳐 선진국 대열에 있는것처럼

우리나라도 고통의 과정을 거치며 발전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해결하는 과정은 힘들수도 있을 것입니다.

갈등을 겪게될 것이며 또다른 희생자들이 생길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아가야되리라 생각합니다. 

 

프랑스는 단지 우리보다 먼저 겪었기에 앞서갈뿐입니다. 그 또한 간단한것은 아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