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새해맞는 샹젤리제 거리의 경찰과 젊은이의 대립

파리아줌마 2011. 1. 2. 10:52

 

새해맞는 샹젤리제 거리의 경찰과 젊은이들의 대립을 보며

 

프랑스 통신사에서 <2010년의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이라는 주제로

거리 인터뷰한 동영상을 보니,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준것, 아이티 참사, 경제위기, 연금개혁안, 폭설>을 이야기했고,

마지막으로 어떤 파리남성은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이를 찾는 것>

이었다고 하는데요, 아직 못찾은것 같았습니다.

 

어제 밤 처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샹젤리제의 풍경을 담기 위해

나가보았습니다. 10년전 새천년 맞은 에펠탑의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어린 딸아이를 목에 태운 남편과 함께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이후로 처음으로 섣달 그믐날 파리시내에

나가보았습니다.

 

당시에는 경찰과 젊은이들의 대립도 없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니 질서만 지켜주면 되는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파리의 새해맞이 모습은 삼엄한 경계의 분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전과 다르게 점점 안좋게 변해가는 프랑스의 모습에 많이 안타깝습니다.

 

1989년 파리에 왔을때 안내해 주었던 선배언니는 프랑스는 거의 범죄가 없다고 하면서,

이른바, 날치기라는 것이 버스에서 대놓고 가방을 뺏으러하고 안뺏길려고 실랑이 벌이는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직접 목격한 광경은 아닙니다만 그정도로 사회가 안정스러웠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리고 거지들중에는 70년대 철학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돈이 없거나 실패해서 거지가 된게 아니고, 깊고 심오한 철학적인 견해로 스스로 세상을 등져버린것입니다.

 

이것이 예전에 제가 알았던 프랑스 사회였습니다. 

 

                                                                                                         2010년에서 2011년으로 넘어가는 날 밤 파리 개선문앞의 경찰들

 

하지만 지금 프랑스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몇년전부터 프랑스 혁명기념일과 새해 첫날은 국경일이자, 수많은 자동차가 불타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공휴일의 여유로움 보다는 프랑스의 공권력이 대대적으로 투입되어 나라 전체가 최대로 긴장하는 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프랑스 똘레랑스 정신과 식민지 지배의 모순이 묘하게 얽혀 많은 외국인을 받아들이고는

통합하지 못한 오늘날 프랑스의 자화상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샹젤리제 거리로 향하는데 무리지어 있는 흑인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조금 섬뜩했습니다. 고등학생이라고도 볼수 없는 정도로 어려보였습니다.

새해를 맞아 친구들과 즐겁게 놀러나온 모습이라기에는 너무 음침했고,

누가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곧 터뜨릴 기세였습니다. 그 무지막지한 젊은 기운을 누가 막을수 있겠나 싶더라고요.

 

샹젤리제 거리의 즐거운 새해맞이 풍경을 사진기에 담고 귀가하기 위해 개선문 가까이에 있는 지하철역쪽으로

가니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있었습니다. 흰옷을 입은 어떤 흑인 젊은이가 개선문앞에서 보초서고 있는 경찰들을

자극하고 있는듯했습니다. 경찰은 메가폰으로 거리아랫쪽으로 내려가라고 연신 부탁을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는 내려가지 않고, 약간 물러나 이번에는 사진기로 경찰들을 찍었습니다.

 

순간 한무리의 경찰이 그에게 다가와 목을 휘감아버리더군요,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경찰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죄를 물어 연행할 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광경을 보며 느낀것이 약을 올린 흑인 젊은이나 발끈한 경찰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경찰도 처음에는 참았겠지요. 하지만 끝까지 참지는 않더라고요.

 

한대 때린 사람이나 이에 가만있지 않고 바로 맞받아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날수 있는 갈등같은것이었습니다.

먼저 때린 사람이 잘못이라고 할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먼저 쳤을때는 그만한 이유는 있었을겁니다.

 

단편적으로 보기에는 경찰을 약올린 흑인 젊은이가 잘못한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그사이 프랑스 경찰과 외곽지역 젊은이들 사이의 갈등의 골은

너무 깊어져 있는듯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의 가장 첨예한 대립은 공권력과 외곽지역의 젊은이들 같습니다.

 

어제 프랑스 내무부는 5만 4천명의 경찰과 헌병을 동원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파리와 외곽지역에 불탄 자동차는 117대였고, 프랑스 전체에서 500명이 소환되었다고 합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개선문앞에 삼엄하게 보초서고 있는 경찰들과, 새해 첫순간을 지하철안에서 술취한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고 어린 흑인 아이들을 보면서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