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박완서작가 별세, 현대사의 어머니를 잃은것 같아

파리아줌마 2011. 1. 23. 09:49

어제 밤 트위터를 통해 박완서 작가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리길래 스스로 좀 놀랐다.

어떤 작가가 세상을 버렸다는 소식에 왜 이렇게 예민한 반응을 하는지..

 

마치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이 세상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것 하나만으로 좋았던 어떤사람을 잃어버린것 같았다.

 

만약에 질곡의 역사 한가운데를 살아온 여성작가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아팠을까 생각해본다. 

 

나의 여자 인생에 뭉근히, 의식하지 못하고 붙들고 있었던 감성의 한가닥이 무너져 버린것 같다.

고뇌를 알아주던 어떤 사람을 잃어버린것 같다.

 

내가 그렇게 그작가를 좋아했던가?

 

30대 초반에 한국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듯 읽어댔다.

한번씩 한국을 다니러 가면 공지영, 신경숙, 은희경 작가의 책을 한웅큼씩 사들고 왔다.

왜 그리 여성작가들의 작품에 심취해있었는지 모르겠다.

 

외국에서의 결혼생활, 그리고 육아, 학업까지 겹쳐 어떻게 정리하며 살아가야될지 모를 시기에

박완서 작가의 <미망>을 만났다. 개성인삼 상인 이야기를 다루었던 대하소설이었다. 

<미망>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미당의 그것처럼 책속의 글귀 하나하나가 눈이 되어 흩뿌려지며 <괜찮다. 괜찮다>하는 것 같았다.

 

박경리님의 <토지>를 읽고 나서는 받지 못했던 감동을 <미망>에서 받았다.

나에겐 박경리님보다 박완서님의 글이 더 와닿았던 것이다.

 

인간의 삶이 시대상황과 동떨어질수 없듯이 여성작가들은 작품속에서

시대의 여성을 그릴수밖에 없었으리라.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되거나, 강요되는것이 아닌

글을 쓰면서 스스로 가질수밖에 없는 소명의식 같은것이리라.  

그녀들 또한 보고, 느껴왔던것들이 있었기에..

그러기에 우리는 문학을 찾나보다. 

 

공지영 작가가 386세대로 6.25의 후유증과 5.18을 겪은 시대의 여성이었다면,

박완서 작가는 전쟁을 겪으며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살아온 분이다.

 

질곡의 역사속에서 드러나지 않게 희생된 인간은 바로 여성들이었다.

척박한 시대 상황과 맞물려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직조되어 가는 인간의 삶속에 또다른 소수자,

여성, 그녀들의 변질되어 가는 삶을 작가는 투영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것이다.

박완서 작가는 한국현대사에 희생된 모든 여성들의 대변인이었다.

 

시대의 굴곡과 봉건주의적 사회구조라는 이중 억압을 겪어나간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의 모습이

그작가의 작품속에 고스란히 녹아져있다. 그분은 전쟁이 없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시대의 아픔이 펜을 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여성들의 아픔이겠지,

 

아픔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위로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작가는 스스로 위로하는 길을 택했다.

그건 글쓰기였으리라. 그리고 글로써 아파하는 이땅의 여성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글을 통해 마음껏 원망하고 분노하고 슬퍼했으리라.

애써 감추려고도 추스리려고도 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시대를 마음껏 한번 탓해 보기도 했겠지.

그리고 나서 용서와 화해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놓고 떠났다.

 

비록 전쟁의 상흔은 딱지가 앉았고, 어느틈에 새살이 딱지를 밀어내고 올라왔지만 짙은 흉터만 남기고 있는데,

제살로 자리잡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텐데, 우리는 그냥 바람에 공기에 스치게만 내버려두면 되는것인가?

그러면 고르게 제 살로 자리잡는것일까? 모르겠다.

 

나의 30대초반, 아내로서, 엄마로서, 꿈을 가지고 있었던 여자로서, 왜 그리 여성작가들의 작품에 집착했는지

이제는 알것 같다. 다가온 삶이 너무 버거워서 같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로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같은 세대의 작가들보다는 엄마같은 박완서 작가의 글에서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나를, 그리고 이땅의 여성들을 너무 잘알고,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그분을 무척 좋아했다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위로를 받기보다는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