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지난 겨울, 어떤 블로그 대상 후보에게 일어난 일

파리아줌마 2011. 6. 10. 07:33

캐캐묵은[?] 이야기 하나 꺼내봅니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워낙 빨리 돌아가는 세상이라 불과 반년전의 일도 옛날이

되어버리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만만찮은 나이탓으로 인한 기억력 감퇴도

한몫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문득 일년전의 일이

어제일 같이 느껴질때도 있지요. 이런 경우는 어떤 상황하에,

어떤 성격의 일인지가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시는 정리가 되지 않고 모호한 상태로 마무리지었던 일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정리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머리속에서 지우지 않고 접어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흔히 말씀하셨던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왠지 상황에 너무 순응하는것 같고, 무기력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월을 살아오면서 경험에서 우러난 어른들의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상황속에 몰입되어 있을때는 잘몰랐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좀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무릎을 치며 부족했던 부분을 깨닫게 되는 경우들이 있더라고요.

블로그 대상후보에게 일어난 일이라 해서 다소 거창하게 들릴수도 있겠습니다만 알고보면 집안일입니다.

지난해 11월 말경 한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시사부문으로 블로그 대상 후보에 올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런게 있는줄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매년 블로그들에게 카테고리별로 상을 주고, 전체 대상을 주는 시상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후보에 올랐다는 자체만으로도 저에겐 과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뿌듯하더군요.

몇 년전 컴퓨터를 배우러 다니시던 친정아버지께서 당신 외손주들 크는 모습 보려면 어떤 사이트로 들어가면 되냐는 말씀을 듣고는, 아이들 사진 올리려고 만든 블로그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운영하고 있는 동포 언론지에 올리던 프랑스 소식을 심심풀이로 싣기도 했지요.

그때가 2007년말이었습니다. 다음뷰가 생기기전으로 <블로그 뉴스>라는게 있었지요. 당시 프랑스 소식 글 몇개가 다음 메인에 뜨게 되면서 트래픽 폭탄 세례에, 당연히 따라붙는 악플도 더러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기억나는것은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한국전체가 들끓을 때, 프랑스가 겪었던 광우병에 관련된 개념없는[?] 글을 적어 네티즌들의 무서움을 체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쉬엄쉬엄, 신변잡기적인 글을 올리면서, 대충 방치하기도 했다가 지난해부터 필이 꽂혀 열심히 블로깅하게 되었습니다. 황금펜에, 대상 후보까지 저에게는 기대 이상의 과분한 성과였습니다.

상을 타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습니다. 후보에 오른것만도 너무 좋아서 사방팔방으로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어느날 밤, 조금 늦게 귀가한 남편은 하얀종이를 내밀며 한국에 다녀오라고 합니다. ‘상을 타던 안타던 시상식에 참여하고 부모님 뵙고 오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본인이 알아서 건사하겠다고 합니다. 그건 한국행 비행기표였습니다. 너무 놀라 잠시 멍해져 있었습니다.

한남자와 18년 정도 살다 보니 이런일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너무 들떠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 태어나고 처음으로 혼자 한국을 다니러 갈수 있게 된것입니다. 이런 달콤한 일이 저에게 주어지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날의 희열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날 저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지금에서야 실수라고 생각하지만 당시는 아주 지혜롭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꽃이나 화분보다는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사오는걸 더 좋아했던 아줌마라 상을 타지 않는데 비싼 비행기표 써가며 한국을 다니러 간다는것은 너무 낭비라 생각되었던것입니다. 그래서 상을 타면 한국을 간다는 위험한[?] 딜을 걸었는데, 혼자만 짐작하고 있었으면 되었을걸 남편에게 통보해버린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남편도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리고는 한국 가고 싶은 마음에, 없던 상욕심까지 생겨 트위터에도 이 사실을 알려 많은 트위터리안들의 네티즌 투표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어리섞은짓을 했는지 몰랐답니다.

당연히 상은 타지 못했고, 말한것처럼 한국행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문제는 비행기표였는데, 남편은 몇 달후 본인이 한국을 다니러 갈때 사용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도한것인지, 우연인지 시상식이 있을즈음 남편이 한국을 다니러 갈일이 생겨버린것입니다던 말이 있어 무어라 그러지는 못했지만 속이 많이 따갑더군요. 그래서 부엌 찬장 서랍속에 깊이 넣어둔 비행기표는 순순히 내어주지는 않으리라 작심하고 있었는데 한국갈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비행기표 달라는 소리를 안합니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요즘은 전자표 시대라 종이 쪼가리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히죽~거리며 웃습니다.

속은 용광로처럼 들끓었지만 무어라 반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럴때 인간은 답답해지면서 참담해지는것 같습니다.

남편이 한국으로 떠나는 1월의 어느날 아침, 여느때와 다름없이 청소기, 세탁기 돌리다가 잠시 주저앉았습니다. 참 기분이 묘하더군요. 삶은 때로는 투명하기보다는 흐리게, 쌈빡하기보다는 애매하게 다가올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종잡을수는 없지만 당한 것 같은 이 기분 좋지 않은 느낌의 실체를 찾아 몇 달을 머리를 굴러 보았더니 남편은 사과 한마디 없이 낼름 한국으로 날아가버린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탓을 할수가 없습니다. 상을 타지 않으면 한국가지 않는다고 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저의 어리섞음이었다고 무릎을 칠수밖에 없었습니다.

입 꾹~ 다물고 가만히 있었어야 됐습니다, 아니면 한국을 다녀왔어야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난 겨울 블로그 대상후보가 소재가 되어 저희 부부 사이에 일어난 집안 일이었습니다. 다음부터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좀더 여우 같은 아내가 되리라 두 주먹 불끈 쥐고 속으로 외쳐보았다는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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