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내가 명절증후군이 부러운 이유

파리아줌마 2011. 2. 4. 09:33

오늘은 한국의 설날이었습니다.

항상 외국에서 맞이하는 명절은 평범한 나날들중의 하루입니다.

 

아이들은 학교로, 남편은 일터로 가고 다만 명절이라는 이유로 기분이

평상시와는 같지 않습니다. 그리 우울하지는 않지만 마음한켠에 무언가

걸리적 대는게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네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괜히 <중국설인것 알고 있어요?>하고 물어보곤합니다.

 

프랑스인들에게 구정은 중국설로 알려져있습니다.

음력을 중국달력이라고 하지요. 그러면 들어서 알고 있다고는 합니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본인의, 이른바 <중국 별자리?>로 돌아갑니다.

12간지, 띠를 이야기하는겁니다. 그저께 작은아이 친구 아빠와 잠시 나눈 이야기였습니다.

 

오늘 아침 한국의 할머니, 할아버지께 전화로 새해인사를 한 작은 아이는 학교가기 싫다고 합니다.

한국의 설연휴 분위기가 이곳까지 옮겨왔나봅니다. 그래도 학교는 빠질수 없지요.

하지만 작은 아이의 베트남 친구는 오늘 설이라고 학교오지 않았답니다.

학업에 악착같은 친구엄마가 왠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동양인들에게 설명절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는것이겠지요.

 

블로그하고부터 한국소식을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특히 명절때면 시의성 맞게 올라오는 글들을 더욱 관심있게 보게되었습니다.

가족들이 모이고,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그리고 그안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갈등들을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라고 부르더군요. 명절만 되면 스트레스 받는 며느님들의 애환이었습니다.

 

찰리 채플린이 이런 말을 남겼지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희극>이라고요.

명절을 보낸 여성분들이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는데 멀리있는 저는 <그래도 저렇게 함께 할수 있어서 좋겠다>

하고 있답니다.  괴로웠던 상대는 아랑곳 없이 상황을 제편에서만 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외국에서 조용한 명절을 보내는 저에게는 명절증후군조차도 부러워보였습니다.

주부님들의 원성을 살 소리라는것은 아는데요. 솔직한 심정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기전에는 이 세상에 아쉬운것도, 두려운것도, 또한 무서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니 외국에서 친척도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족간의 정이 어떤건지     

알게 해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친척들과 자주 어울려보지도 못해

어른을 대하는 범절도 모르고 저만 아는 아이로 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한터라 가족의 정에 목말라하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했던것입니다.

이제서야 사람된거지요.

 

젊은시절 친정 엄마가 김장만 한다고 해도 귀찮아서 줄행랑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김장뿐만 아니라 어떤 일도 즐거워하며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피곤하고 시끌벅적해도 친척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한국의 명절 분위기가

그리워졌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것인지 아님 오랜 외국생활때문인지 가족의 소중함이 더욱 와닿습니다.

아무리 미워할일이 있어도 다시 찾게 되고, 보고 싶어지는게 가족이겠지요.

 

10년전쯤 설 명절에 맞추어 한국을 다니러 갔습니다.

시집이 충남 예산입니다. 오남매중 막내며느리입니다.

설날에 많은 손님들이 다녀가시더라고요.

큰형님 시다노릇을 하며 하루종일 시골부엌에서 상을 차리는데 사실 재미있었습니다. 

몸빼 같은 바지를 입고 흘러내릴 머리카락은 띠로 고정시키고는 열심히 큰형님 지시만 따랐습니다.

가마솥에서 우려낸 사골국물로 끓인 떡국과 시어머님과 형님의 정성과 손맛이 들어간 음식들은 모두

너무 맛있었습니다.

 

따사로운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시골마루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5살박이 딸아이가 사촌오빠의

무릎에 앉아 함께 프랑스 말을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한국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마 한국에 살면서 집안행사다, 명절이다 하며 자주 함께하다 보면 저 또한 명절증후군에 몸서리칠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부러울수밖에 없습니다.

 

어제, 오늘 명절증후군에 시달린 주부님들께는 정말 죄송합니다만 오래 외국생활한 어떤 한국아짐이

명절을 맞아 한국과 가족들 그리워 탄식하는 소리라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