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못한 인간이다 보니 살다가 실수할수 있고,
잘못을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바로 그시점부터일것입니다.
실수를 어떻게 보고 고쳐나가느냐 따라 그사람이 삶에 임하는 자세와
가치관이 드러날것 같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은 이들도 있겠고, 철저히 반성하며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들도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는 삶에 밝은 미래가 있을지는 장담할수 없습니다.
흔히들 잘하는 소리로, <좋은게 좋은거다>, <너무 따지지 마라> 그리고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고들 합니다.
눈에 띄게 문제가 보이는데 좋게 무마하고, 따지면 안되고,
돌아보지마라고 하면 그사람은 어떻게 변화, 발전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본인의 실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고, 고통스럽게 감수를 하고 나아간다면,
똑같은 잘못은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할것입니다.
누구에 의해 강요되는것이 아닌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서만 우리는 변할수 있을것입니다.
그옛날 열강의 각축속에서 우리 힘으로 독립을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또다른 나라의 간접적인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친일잔재 청산은 아직도 요원한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이를 위해 꾸렸던 반민특위와 친일 재산 조사위원회가 해체되었고, 청산은 커녕 그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이용우씨의 저서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라는 책이 나오고 나서 해결되지 않은 한국의 과거사 청산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4년간 독일점령하에 있었던 프랑스와 36년간 있었던 우리나라의 과거사 청산은
같을수 없다는 의견들이 있었지요. 당연히 같은 선상에 놓고 볼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친일잔재의 청산을 이야기하는것이지 프랑스식을 본받자거나,
좋다는것은 아니었을것입니다. 아마 그들의 의도와 정신을 본받자고 한것일겁니다.
지난 가을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포스팅에서도 밝혔다시피 프랑스는 나치의 점령이후
부역자들을 철저하게 처단했습니다. 비록 4년동안의 지배였지만 반민족 행위였는지 생존을 위한것이었는지도
구분키는 어려울것입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그런것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가차없이 처단을 했습니다. 그안에는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도 없지는 않을겁니다.
처음에는 초법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고 하니까요.
어쨌든 그리고 나서 프랑스는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고, 과거사 진실규명과 청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진 : AFP
기차로 유대인 강제수용소로 옮긴것에 대해 철도청장 공식사과
지난 가을 프랑스 지방 마을 시청에 친나치정권이었던 비시정부의 원수였던, 페탱의 초상화가 걸려있는것을
방문자가 발견해서 신고했고, 지역 도지사가 떼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은
법정까지 가게 되었고, 판결로 초상화는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파리가 해방되고 나서 퇴각하던 나치에 의해 자행된, 마이에 양민학살의 생존자들 30명은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것은 <누가>, <왜> 그랬냐는것입니다.
지난 1월 25일 파리근교, 보비니에 있는 기차역에서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과 희생자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프랑스 철도청장의 공식사과가 있었습니다. 1943년과 1944년동안 그역에서는 유태인들 2만명을
강제수용소로 옮기는 기차가 출발했답니다.
프랑스 철도는 1942년과 1944년동안 7만6천명의 유태인을 강제 수용소로 옮겼습니다.
철도청장은 <프랑스 국영철도가 나치 말살 기계의 톱니바퀴 역할을 했다>고 하면서,
<잊지 않을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역사를 더럽히고 전통과 과거를 모욕한 검은 시간들이었고, 프랑스인과 정부가 범죄자들의 광기를
도왔다고 인정하면서, 당시 프랑스국영철도가 행한 일에 대해 깊이 회개를 한다면서, 프랑스 국영철도의 이름으로 희생자들와 생존자들,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과가 그날 모인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모두 설득시키지는 못했답니다.
이미 60여년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하지만 철저히 청산했다고 묻어두지도 않고, 잊지 않으려 하고 있으며,
자주, 그리고 끊임없이 과오를 뉘우치고 있습니다.
이는 치욕스러웠던 역사를 그나마 닦아나갈수 있는 최선의 길일겁니다.
대학시절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고는 그동안 알고, 배워왔던것과는 너무 달라서
배신감과 분노로 잠시 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때의 배신감이 87년 6월 거리로 뛰쳐나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90년대초에 유행했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보고나서 떨쳐버리지 못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한 자들을 잡아 고문하던 야비한 눈빛의 형사[박근형분]가 나중에는 푸른 군복을 입고 건실한 군인의
모습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특유의 화해와 용서를 위한 설정이었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시간동안 연출자의 의도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비록 픽션인 드라마였지만 우리사회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사과와 반성이 있고난뒤에 이루어질수 있을겁니다.
상대인 일본을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내부의 진실규명과 청산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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