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프랑스에 20년을 살아도 불어는 여전히 낯설어

파리아줌마 2011. 2. 17. 09:27

외국생활의 애로사항들중 가장 큰 것은 언어라고 할수 있습니다.

여고때부터 제2 외국어로 불어를 하고,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에 왔지만 언어의 장벽은 말도 못하게 거대하더군요.

그럼 일단은 사람이 위축되게 됩니다.

사소한 문제도 크게 생각되어져 걱정하게 되더라고요.

이는 또한 익숙하지 않은 생활과의 만남에서 오는 것일겁니다.

 

유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저같이 한국에서부터 불어를 익히고 온 사람도 힘든데,

이곳에 와서 불어를 익힌다는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일은 아니지요.

특히 여학생들보다는 통계적으로, 언어에 대한 직관력이 다소 떨어지는

남학생들이 더 힘들어하는것을 보았습니다. 

 

외국생활에 언어로 인한 에피소드는 많습니다.

작년초에 <프랑스어가 한국인을 만났을때> 라는 글을 포스팅했었습니다.

프랑스 유학생들이 끓여먹었다는 똥찌개가 어떤것인지 궁금하시면 클릭해보시기를요~

 

지금이야 타성에 젖어 될수 있으면 불어를 안하고 살고 싶지,

저도 한때는 어떡하면 불어를 잘할수 있을까 고민했던적이 있었습니다.

 

가끔씩 추억의 앨범을 펼치듯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한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선배언니의 도움을 받아 정착했습니다.

함께 살았습니다. 워낙 야물딱진 언니라 매사에 빈틈이 없고 철저했습니다.

교수님과 면담이 있는 날은 혀가 굳어지면 안된다고 아침부터 불어로 대화하자고 언니가

권했습니다. 그런 언니에 비하자면 물러터져 빠진 저는 속으로는 

<아무리 교수를 만나도 그렇지 무얼 그렇게까지?>싶었지만 꼼짝없이 따랐습니다. 

 

한국의 두 마드무와젤이 불어로 대화를 합니다. 그날 남의 나라 말이 얼마나 곤혹을 치렀겠습니까?

언니와 불어로 대화를 하고 있으려니 손발이 오글거렸지만, 그날 교수님을 만나는 언니의 혀가 굳어지면

안되었기에 열심히 말했답니다.

 

그런데 굳이 불어를 안해도 생활에 큰 지장없이 살고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것을 알아차리기도 하지요.

즉, 마음과 마음은 통한다라는 논리 하나만으로 간절히 밀어부쳐도 됩니다. 물론 본인은 답답하겠지요.

그런 분들은 프랑스인에게도 그냥 한국말합니다.

예전에 작곡 공부하러 오신 어떤 교수님은 까페에서 커피 마시고는 갸르송[서빙하는 직원]에게

"아저씨, 커피값"하니 와서 받아가더라고요.

 

 

영화, <인셉션>에서도 나왔던 배경이죠. 파리 지하철 6호선, 비르헤켐과 파시가 이어지는곳입니다.

 

교회 권사님께서 생선가게에서 장을 보실때는 바디 랭귀지가 확실히 통합니다.

고등어 손가락으로 한번 가르키고 양팔 짝벌려주시기만 하면 가게주인은 고등어 한궤작 들고 나옵니다.

어떨때는 열마디 말보다 제스쳐 하나로 통할때도 있답니다.

 

어떤 짖굳은 남학생 둘이 모여 장난 전화로 불어를 익혀보자고 했답니다.

아무 번호로 전화를 걸어 <폴이예요?>하고 물으면 <아닌데요>하면 <죄송합니다>라는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시도를 해보았는데, 폴이냐고 물으니 진짜 폴이라고 대답해서 난감했던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트위터를 통해 한국에 계신 분들과 소통하다 보면 불어에 대한 질문을 해오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조금은 쑥스러웠던게 현재 저의 불어실력은 처음 프랑스 생활 1,2년때만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이곳 생활이 오래되면 될수록 한국 음식을 더 찾게 되는것처럼,

언어도 될수있으면 한국말만하고 불어는 피하고 싶답니다.

이런것을 보고 타성에 젖었다고 하지요. 단단히 젖었습니다.

 

불어를 하기 싫어하니 늘지 않습니다. 아니 줄어들더군요.

사실 한국사람과 한국말로 이야기하는게 제일 행복하답니다.

 

모국어는 본능적으로 가슴에서 나오지만, 아무리 오래 살아도 외국어는 머리에서 나와야 됩니다.

오랫동안 깊이있는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머리에서 김이 나는듯 합니다.

 

그리고 더러 불어가 한국말로 들리는 환청을 경험할때도 있습니다.

이는 향수병이 도졌거나,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신호입니다. 

 

불어가 아름다운 언어라는 이야기가 있지요.

그런데 저는 될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언어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딸아이 말에 의하면 불어가 된소리가 많아 노래로 부르면 참 듣기싫다고 하더라고요.

샹송의 감미로움이 무색해지는 발언에 조금은 놀랐습니다. 

 

20년을 살아도 불어와 친해지지도, 그리고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일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