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일본 원전 사고후 한국을 더 걱정하는 프랑스인들

파리아줌마 2011. 3. 21. 09:08

주인공도, 조연도, 그나마 엑스트라도 아닌데 관심을 받을때는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무언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듯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11일에 있었던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를 보며

우리 한국은 조연도, 엑스트라도 아닙니다. 그저 이웃나라일뿐입니다.

여기에는 오로지 지리적인 위치만이 작용될뿐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원전 폭발이 확대될 경우 우리나라도 방사능 노출의 위험이

전혀 없지 않기에 관심의 대상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원전사고 이후 바다건너 이웃나라인 한국인이라서

주위의 프랑스인들에게 걱정을 들었는데, 생각해주는 그들에게는 무척

미안한 일이지만 지난 일주일 그들의 관심이 부담스럽게 다가왔었습니다.

제가 한국인이니 안부를 물어왔을테지요.

 

어쩌면 이는 북한의 핵문제가 야기될때마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프랑스인들에게 걱정과

북한 비난까지 듣고는 곤란스러웠던 일이 떠올라 더욱 부담스럽게 다가왔을수도 있을겁니다.

사실 좋은 일은 아니지요.

 

매주 목요일마다 운동을 하는데 코치인, 토마가 <한국은 괜찮냐?>고 물어옵니다.

무어라 대답도 하지 않고, <프랑스는 괜찮을까?>하고 농담삼아 되물어버렸습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그랬더니 토마는 <프랑스가 문제라면 전세계가 문제겠지?>라고 하길래 웃고는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프랑스의 원전문제로 가더군요.

녹색당의 원전 논란에 대해 그리 달갑지 않은듯이 말하던 토마는 운동하고 있던 다른 두명의 프랑스여성들에게

제대로 한소리 듣더군요. 그녀들은 이번기회에 모든 나라들이 원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수 있을것인데 그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일것은 아니라고 하니 토마는 아무소리 못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소식에 가슴아파하며 어떻하든 빨리 복구할수 있기를 바랐고, 기부까지는 못해도 블로그에 위젯정도는 달았던 저를 혼란시킨일이 있었습니다. 베트남 보트피플이었다가 프랑스에 정착한 린은 중학교 교육부터 프랑스에서 받았습니다. 프랑스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지난주 린은 한국은 괜찮냐고 또 걱정을 해줍니다. 그래서 한국은 지금 일본을 도우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하니, 린은 대뜸 <뭘 도와? 일본은 부자잖아. 티비에 나오는 피난민들 가방이 거의 루이뷔통이던데?>라고 했습니다. 순간 그녀의 차가운 이성에 좀 썸뜩하기는 했지만 저 또한 기분이 묘해지면서 혼란스러워지더라고요. 

이는 어쩌면 일본 사태를 보는 프랑스인들의 전반적인 반응이 아닌가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돈기부에 대한  문제제기의 글들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팔랑귀가 되었습니다.

 

일이 터질때마다 지나치게 감성에 호소하는 우리들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냄비근성이라는 소리도 나왔겠지요.

물론 재난을 당한 일본을 도우는 일은 좋은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내부에 도움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것 같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일본 원전 사고가 나자마자 자국에게 주는 교훈부터 챙기려합니다. 바로 이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고, 원전 반대 시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요일[20일]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원전인 Fessenheim에서 만여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고, 파리는 천여명, 낭트는 삼백여명, 릴은 백오십여명등 프랑스 도처에서 원전을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주에는 방사능을 차단할수 있는 panache[?]를 설치할것이라고 합니다.

 

지진이 전혀없는 프랑스이지만 있을수 있는 자연재해로부터 자국민을 지키기 위한 대책마련에는 경각심을 늦추지 않습니다.

 

프랑스에는 매달 첫번째 수요일 공습경보가 울려

 

프랑스에는 매주 첫번째 수요일 정오에 사이렌이 울리는데 평온한 일상의 리듬을 깨는 불청객입니다.

점심식사 준비할 시간에 느닷없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는 흠찟 놀라는데, 이내 알아차리고는 놀란게 억울해져

짜증이 엄습하곤 합니다. 온몸의 신경이 분산되는듯한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프랑스 국가 경보망에서 자연재해나 핵사고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경보장치가 잘 작동되고 있는지 테스트해보는것이라 합니다. 나라 전체에 4천 5백개가 있는데, 음향은 2차대전시 공습경보때와 같다고 하니, 그렇게 신경을 자극했나 봅니다.

 

감정적이지도, 소란스럽지도 않고 자국민 보호에는 철저합니다.

지난 목요일 이래 프랑스 정부는 일본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중 프랑스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이들, 977명을 공군기를 이용해 서울을 경유, 파리로 안전하게 이동시켰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정부 차원에서 일본의 복구와 물질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반적인 분위기가 일본을 걱정하는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지금 프랑스인들은 자국의 원전과 리비아 공습에만 신경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재난당한 일본을 도우려는 마음은 좋은것이겠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안에 그런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먼저 돌아볼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프랑스인들로부터 걱정을 들은건 아닌가하는 억지를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