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애견의 나라 프랑스에서 개밥 먹은 사연

파리아줌마 2011. 4. 6. 08:23
                                삶은 부메랑 같은것

 

우리는 흔히 앞으로 닥칠일을 예견하지 못하기에 남에게서 일어난

일에 대해, 함부로, 그리고 때로는 거침없이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일이 나에게도 일어날수 있다는것을 생각한다면

쉽게 단정짓기보다는 이해하려고 하겠고, 좀더 신중하게 생활에

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벼운 제목을 적어놓고 은근 무게있는 서론을 꺼낸듯합니다.

우리들 삶에 일어나는 모든일들중 가벼이 넘길수 있는건 없습니다.

그렇게 넘기고 싶은 인간의 나약한 의지만이 있는거지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렇게 계속 진지한 태도로 나가는지,, 원,,

 

예전 대학 1학년때 교양과목으로 영어수업을 들을때입니다.

어느날 교수님은 가족을 동반해서 미국유학 갔을때의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 비행기에서 내리고나서부터 가족들은 교수님이 웃으면 함께 따라 웃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 함께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언어 소통이 되지 않았기에 교수님, 그러니까 남편, 아빠의 표정하나만으로 일이 순조로운지 어려운지를 짐작하고는 가족 연대의식이 발휘되었던것입니다. 그건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연대의식이었을겁니다.

 

그런데 그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교수님과 가족의 모습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상상이 되길래 저는 가볍게 키득거리며 웃었습니다. 당시 제가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하신 말씀같기도 한데, 단순히 내용만 기억나는군요.

교수님은 비록 지난 일을 이야기한거지만 그당시는 외국땅에 도착해 적응해나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다 남의 곤란했던 일이 저의 즐거움이 되어버려 그날은 키득거렸지만,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일이 있었으니,,,,

 

20여년전 이곳에 유학을 올때 6개월 먼저 와있던 선배 언니의 도움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어린 딸내미 머나먼 외국땅으로 보내면서 그나마 안심할수 있었던것은 그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항에 마중나와있던 언니의 인도로 택시를 타고 잠시 거처할 집으로가 짐을 내려놓고 에펠탑부터 가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산설고 물선곳으로 온 저는 친절한 선배언니의 안내를 받으며 따라다녔습니다.

언니는 워낙 똑똑해 유학 생활을 어떻게해야되는지 파악하고는 필요한것들을 잘 일러주었답니다.

 

비록 불문학 학부과정을 마치고 왔지만 프랑스 사람들의 말을 처음에는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당시 언니의 말한디는 저에게는 절대자의 명령같았습니다. 이리가라면 이리가고 저리가라면 저리가야만 되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영어교수님 가족의 모습이나 다를게 없었던거지요.

 

어느날 언니와 함께 대형슈퍼에서 장을 보았습니다. 언니는 공부하려면 잘먹어야 된다며 소시지 하나를 제 장바구니에 넣어주었습니다. 투명 비닐에 싸인 두툼한 아주 고운 분홍빛 소시지였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기거하는 집으로 와서는 식사준비를 했습니다.

 

파리 12구에 있는 빌라 방 한칸을 언니가 얻어주어 잠시 머물던 중이었는데, 조그마한 부엌 창문을 열면 옹기종기 모여있는 빌라들의 뒷마당이 나오는데 전형적인 유럽의 분위기가 느껴져 아주 운치있었습니다.

 

그 빌라는 8월, 파리의 지하철이 오고 가면서 일으키는 바람에서 묻어나오는 냄새와 베란다에 즐비하게 피어있던 주황빛 꽃들, 그리고 여름임에도 청명한 가을 날씨 같았던 파리에서 받은 첫느낌과 함께 추억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곳입니다. 마치 그곳만이 파리였던것 같습니다. 

 

첫느낌은 항상 신선하기에 깊이 자리잡나봅니다. 그다음은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 넘어야할 한계들, 그리고 지겨운 생활의 연속으로 타성에 젖기도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가끔씩, 혹은 자주 떠남을 갈망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듭니다. 그게 여행의 묘미겠지요. 처음 다가왔던 파리의 기억속에 잠시 빠져있었습니다. 

 

빌라로 돌아와 엄마가 한국 떠날때 준비해준 쇠고기 고추장조림과 오징어무침을 밑반찬으로, 그리고 정성스레 잘라 구운 소시지와 함께 창문을 활짝 열고 유럽 분위기를 물씬 느끼며 식사를 했습니다.

 

소시지를 한입베어 무는데 입안의 느낌이 역합니다. 육식을 즐기지는 않지만 소시지는 싫어하지 않습니다.

문득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소시지를 먹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입안에 조그마한 뼈까지 씹힙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남은 소시지를 살펴보니 귀퉁이에 조그마하게, 아주 조그마하게 예전 초등1년 국어책에나 나온듯한 귀쫑긋한 <바둑이>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견공들이 먹는 소시지였던것입니다.

 

선배언니가 집어서 장바구니에 넣어준 소시지는 당연히 저를 위한 배려였고, 한번더 살핀다는건 그녀를 못믿는 불온한 짓이었습니다. 어찌 영어 교수님의 이야기를 단순히 키득거리며 들을수 있었는지.,,

 

선배 언니는 6개월뒤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고 그이후 저는 홀로서기를 해야만 되었답니다.

비록 개밥은 먹었지만 그녀가 있었기에 유학 생활을 순조롭게 시작할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그일이후 슈퍼에서 두터운 소시지를 고를때면 요리조리, 앞뒤전후 <바둑이>그림이 있는지 잘 살펴보는 습관이 생겨 수많은 시간이 흐른뒤에야 없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족 : 이글은 작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뷰로 송고하지 않았기에 다시 구성하여 포스팅했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운 댓글이 있어 덧붙입니다. mikekim님이 남겨주신글 :  

<미국서 강아지 그려져 있는 통조림보고 개고기도 통조림으로 파는구나 하고 사먹었다던 분이 떠올랐어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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