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인터뷰] '톱 셰프'에 나왔던 김상만씨를 만나다

파리아줌마 2011. 4. 18. 08:33

프랑스 방송, '톱 셰프'에 나왔던 김상만씨를 만나

 

꿈은 이루어진다 ? 블로깅을 하면서 얼마전에 가졌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프랑스 방송, ‘톱 셰프에 진출한 입양인, 김상만씨에 관한 글을 올리고 나서

그의 부인이 댓글을 남겨준 것이 너무 반갑고 영광스러워 감히 김상만씨를 인터뷰할

꿈을 꾸어본다는 사족을 달았던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결승까지 올라갔었고, 저의 꿈만 야무지게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건 어떠한 기대도 없었던

온전한 소망이었습니다. 기대에는 항상 주관적인 잇권이 개입됩니다.

이를 흔히 욕심이라고 부르지요. 우리가 실망을 할때는 기대가 무너졌을때입니다.

하지만 기대는 없이 « ~~했으면 정말 좋겠다>라는 마음은 소망입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실망과 좌절을 겪었습니다. 거기에는 욕심이 개입되었다는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래서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대보다는 소망을 가지는 연습을 해오고

있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라 더욱 좋았답니다. 그러고 보니 너무 잘난척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저같은 일개 블로거의 인터뷰 제안에 응해준 김상만씨와 그부인에게 먼저

감사해야될일인데 말입니다. 너무 신나고 좋아서 제 이야기만 주저리 늘어놓았습니다.

 

아직은 철이 덜든, 불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혹하기만 하는 치기 어린 아짐의 이야기로 받아주셨으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했습니다. 티비에서만 보던 사람을 직접 만나본다는게 신기하기만 했나봅니다.

리옹으로 떠나기 전날밤 아이들은 들떠 있었습니다.

큰아이는 김상만씨를 보면 고개 숙이며 안녕하세요 ? 하고 인사할것 같다고 하고,

둘째는 무슨 옷을 입을지 그날 밤 내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은 쌀쌀했지만 햇살은 화창했던 지난 목요일 아침 리옹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마침 아이들이 부활절 방학이라 휴가를 보낼겸해서 떠났습니다.

파리에서 리옹까지는 400킬로입니다. 1230분 리옹에 있는 한국식당인, <미나네>에서 만날 약속을 했었는데,

저희들이 30분 늦게 도착해버렸습니다.

 

먼저 김상만씨 부인과 인사를 했습니다. 몇번의 전화통화에서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워낙 시원스러워 여장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었는데 너무나도 가녀린 여인이었습니다. 조그마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아주 반듯한 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상만씨는 <봉쥬르, 안녕하십니까 ?>하고 불어에 이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넵니다. 

 

실물이 훨씬 잘생기고, 184센티 정도의 키에, 완전 연예인, 모델 같았습니다. 남자치고는 지나치게 하얀 피부 빛깔과 서글한 눈매하며, 턱수염까지 완벽한 훈남이었습니다. 그가 등장하니 주변이 훤해지는 듯했습니다.

한국말을 할줄 아느냐고 물으니 지금 아이들과 함께 부인에게 배우고 있는데 아이들이 본인보다 한국말을 더잘한다며

겸연쩍게 웃습니다.

 

 

리옹의 한국식당 <미나네>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김상만씨 부부

 

식당 사장님께서 권해주시는 음식을 먹고 나서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았습니다.

김치찌개가 꽤 매웠는데 괜찮냐고 물으니 김상만씨는 이렇게 매운것 너무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질문은 지난번 그에게 동화를 지어준 까뜨린느가 제안해준 것들을 중심으로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요리, 예술적인면, 그의 코스모폴리탄적인면, 티비 출연,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나누어 정성스럽게 제안해주었습니다.

 

* 톱 셰프 방송이 이제 끝났는데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요 ?

 -리옹에 있는 오페라 식당일은 지금 관둔 상태입니다. 현재 여러 제안들이 들어오고 있는데요.

일단은 파리에 있는 식당 행사들에 참여할 예정이고요, 목표는 저의 식당을 오픈하는것입니다.

 

*어떤 요리를 주로 만드시나요 ?

-전 주로 제철에 나는 재료들을 중심으로 요리하기를 좋아합니다. 가장 제 맛이 있을때지요.

 

* 방송을 통해보니 요리에 붓을 많이 이용하는 것을 봤어요. 어떤 이유라도 있나요 ?

-친할아버지가 그림을 그리셨어요.  여름에는 낚시를 즐기셨고, 겨울에는 그림을 그리셨죠.

그런 영향이었던것 같아요.

저는 어린시절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보낸 기억들이 아주 좋았어요. 자연과 벗하며, 낚시하는것을 아주 좋아했어요.

 

 

그는 식당에서 저희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에게 이번 리옹행이 더욱 의미가 있었던것은 저희 아이들과 함께 했던것입니다. 아이들과 티비를 보며 이야기했던 사람을 함께 만나는것, 그리고 항상 남을 배려하며, 긍정적이고, 겸손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방송에서 높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터라 아이들에게 심어질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쉽지 않았던 상황속에서 열심히 잘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부인과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희 가족과 그의 가족의 만남은 저에게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었답니다.

 

* 특별히 좋아하는 그림이 있나요 ? 그리고 그런 예술이 요리에 나타나겠지요 ?

-할머니가 그림을 좋아하셨어요. 하나만 고르지는 못하겠어요. 피카소, 모네, 반고호 그림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안에 깃든 자유로운 정신이 좋았어요. 당연히 제 요리에 나타나지요.

 

* 붓을 이용하니 당연히 서예에 관심이 있겠네요 ?

-,, 서예에 관심 많아요. [옆에 있던 부인이 남편이 손재주가 있어 글씨를 아주 잘쓴다고 합니다.]

그리고 붓글씨를 배우고 싶어요.

 

<미나네> 사장님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습니다. 리옹에 있는 한국식당 <미나네> 강추합니다.

어떠한 화학조미료도 쓰지 않고 사장님의 요리 노하우로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었습니다.  

 

* 리옹에 살다가 런던에서 일한것으로 아는데요 이런 움직임, 즉 여행들이 요리에 어떻게 나타났는지요 ?

저는 사람의 만남을 중요시 여깁니다. 다양한 인종들과 만나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가질수 있는 자유로운 사고는 제 요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해요.

{그도 그럴것이 방송에서 김상만씨는 항상 위험스런 도전을 감행했습니다. 어떤 고정적이고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고자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 이런 일련의 여행들이 요리사라는 직업전선에 미친 영향이라면요 ?

-조금전에도 밝혔다시피 저는 만남을 중요시 여깁니다. 특히 요리는 팀웍이 중요합니다.

저는 실력이나 재능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런사람들과 함께 라면 충분히 좋은 요리를 만들수 있어요, 요리자체 보다는 함께 해나가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상만씨 집 근처에 있는 새로 생긴 까페입니다. 보라색과 검은색의 대비로 꾸며놓은 내부가 아주 멋지더군요.

 

* 당신의 그런 긍정적인 사고는 어디서 기인된것인가요 ?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문제가 있더라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해결하라고 하셨죠.

 

* 그런데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것은 좋은데요. 이세상에는 항상 좋은 사람만 있는건 아니잖아요 ?

-전 아직 그리 나쁜 사람을 만난적은 없어요. 사람을 대할때 항상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해요. 그러면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제 겨우 30살밖에 안된 사람이 저렇게 신중하고 속이 영글어질수 있나 싶었습니다.

물론 방송을 통해 그의 인품은 어느정도 느낄수 있었지만요.

 

부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이런 성품 때문인지 요즘 많은 이들이 도우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합니다. 부인은 본인도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본인보다 더한 사람이라며,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 관대함 »이라고 합니다.

 

김상만씨가 한국 이태원의 르생택스에서 몇달동안 일했을때 바로 옆 식당에서 매니저를 맡고 있는 부인을 만난것이었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마치 색시 구하려 한국에간 경우가 되어버린것입니다. 이세상에 우연이 어디있겠습니까 그 모든게 필연이었겠지요.

  

김상만씨 부부는 만 3살 반이 된 이란성 쌍둥이를 두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더군다나 쌍둥이 자녀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았을듯해서 물었더니, 시어머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하면서,

시어머님은 정말 좋은 분이라고 하는 그녀의 눈에 살짝 물기가 비칩니다.

저도 함께 시큰해지길래 얼굴을 돌려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그어머님에게 저 또한 한없이 감사해지는, 이 오지랖 넓음과 주제 넘음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새벽 1시에나 퇴근하면서도 아이들 젖먹이 시절에 새벽에 일어나 우유를 주는 등 남편이 많이 도와 주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김상만씨 부부는 한국에 부모를 찾기위해 갔는데, 쉽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 부부는 서로를 무척이나 아껴주고 있었습니다. 정말 부럽고[ ?],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부인이 아주 지혜롭고 현명해보였습니다.

아주 세련되고 교양 있었으며 그의 든든한 내조자로서의 역할을 잘해나가고 있는듯했습니다.

 

인터뷰 계속 이어집니다.

 

 

 *한국에 갔을 때 어떤것들이 당신에게 인상적이었나 ?

     -2004년 처음 한국에 갔을때 문득 어떤 음식냄새를 맡게되었는데요, 너무 익숙한거예요.

     그래서 «  ! , 이거 알아>하며 놀랐던적이 있었어요.

 

    *한국식 요리 방법에 영감을 얻은적이 있었나요 ?

    -말린 생선이나, 마른 오징어 등에서 있는 질감이 프랑스 요리에서는 찾아볼수 없는것이예요.

     그래서 이런 방법을 이용해보기도 했어요.

 

 

 

 

    *‘톱 셰프라는 방송출현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였나요 ?

     -인간적인, 직업적인 도전이었고, 많은 감동을 가져다 주었어요,

 

   *방송출현이 요리적인 측면에서 어떤 경험들을 이끌어낼수 있었는지요 ?

   -요리 스타일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했다는것이 저에게는 아주 중요한거였어요,

 

    *당신 요리의 모든것을 보여준거예요 ? 아니면 숨겨놓은 것들이 있는지요 ?

      -한부분만 보여준거예요, 나머지는 차츰 나올겁니다.

 

그가 사온 산딸기 케잌을 함께 나누어 먹었답니다.

 

 

  * 한국인들의 많은 지지와 응원이 있었어요. 당신을 응원해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다면요 ?

   그리고 그게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요 ?

  -저 사실 너무 놀랐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거였어요, 너무 감사하고, 정말 멋진거였습니다.

   저의 목적은 항상 가슴으로 요리하고 그안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고 싶답니다. 한국인이든 어느 다른 나라 사람이든지요.

 

  * 이번 방송의 성공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은지요 ? 혹은 평상시 관심있었던 다른 분야의 일이라면요?

   -저는 고아원에 있었습니다. 그건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힘든 이들을 외면하고 싶지 않아요.

    협회를 통하든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자주 저자신을 잊고 주위 사람들만 챙길때가 있어요.

    아마 제가 힘든일을 겪었기에 그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 7살 때 프랑스에 와서 적응하기 힘들지는 않았나요 ?

      -당시의 기억은 별로 없어요. 받은 사랑만 기억이 나요,

 

     *어떻게 요리법을 알게 되었어요 ?

       -가족을 통해서요. 어린시절에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요리하는 엄마와 테이블에 함께 앉아 나누어 먹는것,

       그게 요리에 대한 열정을 갖게 만든것 같아요.

 

    * 당신의 멘토는 누구였나요 ?

      -가족. 부모님, 조부모님, 특히 엄마요,

 

    * 어린시절 가장기억에 남는 요리는요 ?

      -하나를 정하는것은  항상 힘들어요. ~ 닭요리요

 

   * 만약 요리사가 안되었다면 어떤일을 했을것 같아요 ?

     -스키모니터가 됐을거예요.

 

 

 

 

 

   식당에서 자리를 옮겨 그의 집근처로 갔고, 김상만씨는 저희 아이들과 학교로 아이들을 찾으러 갔습니다.

   부인과 까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빠를 빼닮은 작은 사내아이가 뛰어와서 엄마품에 안깁니다.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딸이 들어오더군요. 아이들이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요.  저희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는 리옹을 떠나 알프스 밑에 있는 도시인 안시[Annency]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김상만씨 가족과 함께한 흔적이 깊게 남아있는듯했습니다. 그게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그에게서 가슴 깊이 묻어놓은 상처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건 개인적인 기우였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안시와 제네바를 거쳐, 본[Beaune]까지 들르고 나서 파리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한낮의 생기를 잃고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정리가 되더군요. 그는 최악의 환경을 열심히 펌프질해서 톱 셰프라는 샘물을 길어올렸습니다.

그건 부모님의 사랑과 그의 의지와 노력이 함께 일구어낸 결과였습니다.

최악을 최선으로 이끌어낸 그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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