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외국에서 당하는 부당함은 무조건 인종차별인가?

파리아줌마 2011. 4. 22. 07:35

얼마전 고등학생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니만 차별을 당했다며

기분 나빠합니다. 저 또한 '내 자식 최고"라 하고 싶은 암탉 기질을

가진 에미인지라 순간 피가 역류하는듯하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내자식 최고라고 해도 아이 이야기는 잘들어보아야된다는

것을 여러차례 경험을 통해 터득한지라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한 상태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이야기인즉, 사회경제수업시간에 어떤 친구가 연필을 이용해 이상한

소음을 일으키니 아이들이 웃었고, 그와중에  선생님은 딸아이에게

'너한테도 이게 우스운거냐'고 물었고, 아이는 '그렇다'고 답하니,

'그럼 이건 세계적인 현상이구나'했다는겁니다.

순간 아이들은 웃음을 멈추었고, 몇초간 침묵이 흐르더라는겁니다.

 

아이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더랍니다. 아이 안색을 살핀 선생님은 다가와 문화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더랍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수업시간에 느닷없이 아이들이 산만해지니 선생님이 기분이

나빠진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어떤 보편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딸아이를 붙들은것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 속마음은 어땠는지 모릅니다. 아이 말에 의하면 평상시에 호기심 많고, 워낙 성격이 까칠한 선생님이랍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내린 결론은 차별이라기 보다는 다름으로 인해 생긴일로 받아들였습니다.

차별이라고 해도 어쩔수 없습니다. 문제 삼을일은 아니고, 그로 인해 아이가 학교생활에 방해될것은

전혀없습니다. 다만 아이가 차별이라고 생각했기에 함께 이야기하며 정리할 필요는 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어차피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데 그들의 낯설어하고 어색해하는 시선은 당연한것입니다.

이를 차별이라고 할수는 없겠지요. 차별은 같은 상황하에서 다른이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것을

이야기하는거겠지요. 그런데 구별과 차별을 혼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이에게 있었던 일은 차별이라기보다는 구별이었습니다. 아이는 구별을 당한것입니다.

이를 차별이라고 생각한 아이는 위축감을 가지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합니다.

 

산설고 물선 외국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언어부터, 생활, 사고 방식등의 차이가 항상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지요.  그러면서 사람을 소심하게 만들기도 하고 위축감마저 심어줄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개인적으로 가지는 이상적인 외국생활은 여행이나, 한 1,2년 세상구경하며 견문을 넓히기 위해 잠시 머물면 가장 좋은것 같습니다. 

 

위축감은 일종의 열등감으로 이야기할수 있습니다.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어떤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어집니다. 그러기에 그런 사람을 대할때는 더욱 조심스러워야되는것입니다. 그런데 현지인들이 그런것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들 방식대로 대합니다. 이건 당연한것입니다. 로마가면 로마법을 따라야되는데 한국적인 생활과 사고 방식 그대로 가지고 외국생활하면 도처에 인종차별과 서러움 투성일겁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게요. 외국이라도 일본이나 중국에서 인종차별 당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같은 동양이라서 그렇다손치고, 그럼 다른 외국인 아프리카, 남미에서 인종차별 당했다는 소리 또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유독 미국과 유럽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지요. 그이유는 선진국이라는 이유로 인해 한국인들이 가진 위축감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인종차별 당했다고 하기전에 본인의 행동과 태도를 먼저 돌아보았으면 

 

트위터를 통해 '인종차별을 받은적이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억나는 끔찍했던적이 한번 있었습니다. 

SOS Racisme 이라는 협회에 찾아가서 인종차별로 고발할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10여년전의 이야기입니다. 대학교에 등록하러 갔을때 긴 줄을 서서 기다려 차례가 되어 들어갔는데 여자 직원이

저를 함부로 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오래되어 세세한 기억은 없고 너무 기분나빠 한동안 아무것도 못했었는데, 그녀는 프랑스인이 아니고 구릿빛 피부색을 가진 저와 같은 외국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히 제 태도에도 문제는 있었을겁니다. 이렇듯 나의 태도는 생각나지 않고 그녀에게 받은 수모만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날은 싸우느라 등록을 못했고, 다음에 학교에 가보니 언제 그랬냐는듯이 친절하게 저를 대하더군요.

이를 인종차별이라고 분개했던 자신이 좀 부끄러워졌습니다. 

 

그옛날 흑인들에게 가해진 억압과 나치가 유대인에게 자행했던것은 인종차별이었습니다.

이는 집단적인 성격을 띕니다. 이런 역사의 악몽은 강한자는 무조건 차별하는이로, 약한자는 당하는이로 보는

고약한 선입견이 자리잡을수 있습니다. 이런 편견을 떨쳐버리지 않고 외국생활을 하다보면 현지인을 인종차별하는 이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사는 프랑스에 인종차별은 있습니다. 그러기에 법으로 엄하게 단속하고 있지요. 

하지만 개인간에 당한 부당함은 인종차별이라기보다는 경우를 잘 생각하고 대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되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외국으로 어린 자녀들 데리고 유학오는 한국 엄마들은 외국학교에 아이들 보내놓고는 아이말만 듣고 반아이들과 선생님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지극히 주관적일수 있습니다. 본인이 한 행동과 말은 빼고 받은것만 이야기하게 되고 이를 철썩같이 믿는 엄마는 양같이 순해 세상의 거친 물살에 휩쓸기만 하는 아이를 걱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픈 가슴 부여잡고,  모진 세상에서 의롭고 정당한 사람이 받는 고난[?]에 숙연해하며, 외국생활의 설움을 간직한채 <산장의 여인>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곤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서로 통하게 되어있습니다. 좋은 마음도 나쁜 마음도, 외국인이건 한국인이건간에요.

예외는 있겠지만 무턱대고 불친절하거나 차별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있습니다. 그러기에 외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하기전에 본인이 한 말, 행동, 그도 아니라면 마음가짐을 한번 돌아볼 필요는 있을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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