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광주민주항쟁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파리아줌마 2011. 7. 27. 08:22

5.18 광주 민주항쟁,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주역인

김영진 의원에게 들은 등재 과정과 뒷이야기들

 

지난 주말, 독일 루르지방으로 여행하며 얼떨결에

세계 한인 교류 협력 기구[W-KICA]의 유럽창립지부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구는 평소 해외동포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일해온

민주당의 김영진 의원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럽창립지부식에 참석한 김영진 의원의 강연을 들을수

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김영진 의원은 지난봄 파리에서

외규장각을 찾은 박병선 박사를 만나 국회에서 증언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정도였습니다.

 

당시 박병선 박사님의 인터뷰 포스팅을 하며 김영진 의원과 박사님이

한국 식당에 있는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분이 왜이리 유럽에

자주 오고, 해외동포들에게 관심이 있을까 의아스럽기는 했습니다.

그간 들어온 정치인들의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어 처음에는 의심스러운 마음이 전혀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년에 있을 대선에 해외동포들도 투표를 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것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을 했드랬습니다. 그런데 김영진 의원은 1992년 LA 한인타운 흑인폭동을 수습하러 갔다가 해외에 있는 한인들의

애환과 고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번 재외동포 참정권 회복을 위해 많은 일을 하신 분이더라고요. 잠시나마 가졌던 편견에 죄송해졌습니다. 이래서 편견과 고정관념을 경계해야되나 봅니다.

 

김영진 의원은 오선 의원으로 여당 10년, 야당 10년의 정치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날 재유럽 한인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내년에 있을 해외동포투표를 일컫으며,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불꽃같은 눈동자로 정치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투표하십시요"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김영진 의원에게서 당리당략의 기미는 전혀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진정으로 해외동포들을 위하고 있었습니다.

 

                                                                      세계한인 류협력 기구, 유럽지부 창립총회에서 강연하고있는 김영진 의원

 

광주민주항쟁의 기록은 14명의 유네스코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켜

 

강연중에 김영진 의원은 다음날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파리로 간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광주민주항쟁이 유네스코에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있었던 과정과 고초를 이야기 하기 시작하기에, 널럴하게 듣고 있다가 빈장이 없는 수첩의 여백에 빼곡히 노트해왔습니다.

 

지난 봄 광주민주항쟁 31주년을 맞이하며 트위터를 통해 유네스코 등재에 반대한 세력들이 있었다는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되었다는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등재를 준비하고, 주관했던 주역이 바로 김영진 의원이었더라고요. 그의 강연을 중심으로 아시아 투데이지에서 나온 김영진 의원 인터뷰를 참고했습니다.

 

김의원은 18대 국회에 들어와 교육과학기술위원으로 유네스코 한국위원에 선임돼 유네스코 아태지역 교육의원연맹 수석부의장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장을 맡고 있던 이가 본국의 선거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부의장인 김의원이 의장 권한 대행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2009년 유네스코 총회 연설차 파리를 방문해서 업무보고를 받았는데, 세계기록 유산에 넬슨 만델라 형사재판 기록이 등재되어있는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세계인들이 남아공화국을 찾았고, 넬슨 만델라가 투옥되어 있었던 감옥이 방문 장소로 되어있는것을 보고는, 당연히 518 광주민주항쟁도 등재되어있는줄 알고 알아보니 신청조차 안되어있길래 헵번 유네스코 의장에게 물어보았답니다. 헵번 의장은 본국에서 자료를 보내와서 심사를 거쳐서 기록유산에 등재하게 되어있다고 하더랍니다.

 

이에 김의원은 한국으로 가서 바로 20명의 등재추진위원회를 구성해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답니다. 광주 시민들에게 장롱속에 있는 광주 항쟁의 흔적들을 그대로 놓아두지 마시고 내어주십시요라고 호소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3개월만에 3만 5천점의 자료가 나왔고, 총8만여점이 모아졌다고 합니다. 기자수첩, 병원기록, 계엄공수부대의 지시전달 문서등,,모든 자료를 영어로 번역해서 유네스코에 제출했답니다.

 

자료를 심사하던 14명의 심사위원들은 "10일동안 기관이나 가게가 하나도 털리지 않고, 범죄도 일어나지 않고, 어떻게 평화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나", "광주의 비폭력, 평화 정신은 세계 민주화 역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탄복했고, 눈물을 흘리며 심사한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김영진 의원

뉴라이트와 극우단체의 방해로 난관에 부딪혀   

 

지난해 11월 등재심사소위원회가 있기전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가 파리의 유네스코를 찾아가 광주항쟁은 김대중추종세력들이 일으킨 반란이라며 등재 반대청원서를 제출했고, 또한 국제자문위원회 심사 막바지에 한미우호증진협의회라는 극우단체가 ‘5.18양민학살은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련의 반대로 김의원은 헵번 의장에게 등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답니다. 이에 김영진 의원은 뒷통수를 맞는 충격이었다고 회고 했습니다.

 

31년동안 밤마다 광주항쟁때 실종된 자녀가 돌아올까봐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회 회원들 3백여명은 내자식이 김일성의 특수부대에 희생됐다는데에 울분을 참을수 없어 처들어가겠다고 하길래, 김의원은 그들을 말렸고, 국회 대정부 질문을 자청해서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 광주항쟁을 대하는 역사의식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김황식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묘역 참배도 했지 않느냐 하면서, 정부의 등재지원 답변을 주어 영문으로 번역해 유네스코에 곧바로 보내면서, 5 23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심사에서 등재권고 결정이 내려졌고, 24일 보코바 사무총장의 서명으로 최종 확정됐다고 합니다. 

 

아시아 투데이지와의 인터뷰에서 김의원은 이번 성과를 민주성지 광주가 이제 세계민주화운동의 성지로 65억 지구촌 인류의 가슴에 아로 새겨져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층 드높인 쾌거”이며, "민주화 제단에 산화하신 5월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유네스코 심사위원들을 감동시킨 결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419혁명과 삼일독립운동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에 김의원은 9월5일 유네스코 실무진들이 선포식을 하기 위해 광주에 온다고 합니다. 그 행사를 하고 나서 등재 신청을 하겠다고 했답니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광주항쟁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에 대해 그 일을 도맡았던 분에게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나니 감동이 밀려오더군요.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행사장을 떠나려는 김영진 의원을 찾아가서는 광주항쟁 유네스코 등재에 관한 강연을 감명깊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고하셨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드는 생각이 권력이란, 힘이란 이렇게 써야되지 않을까 싶었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에 드신다면 손가락 모양의 추천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필요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