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샤넬의 나치 스파이 활동 기록한 전기가 미국에서 출간
어제 우리나라 언론을 통해 코코 샤넬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첩자였다는 기록이 있는 전기가 미국에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벨기에 언론을 인용한 기사였는데, 어제 오늘 프랑스
언론들도 관련 기사를 싣었더군요.
2차대전이 끝나고 66년이 지났건만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90년대에 나치 부역자였던 모리스 파퐁을 법정에
세웠고, 지난해에도 프랑스 작은 마을 시청에 2차대전시 나치에 협력했던
비쉬 정부의 원수였던 페탕의 초상화가 걸려져있는것을 고발해
제거했습니다. 또한 올해초 프랑스 철도가 유태인을 수용소로
수송했던것에 대해 치욕스러운 과거라며 프랑스 국영철도청장은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세계 패션의 아이콘인 샤넬의 창시자, 코코 샤넬의 나치 첩자 활동 소식을 들은 프랑스인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지더군요
<배신의 향수>
코코 샤넬, 사진펌
코코는 그녀의 애칭입니다. 원래 이름은 가브리엘 보네르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이라고 합니다.
르몽드지 소속의 어떤 블로그를 보니 <배신의 향수, 코코샤넬이 나치요원이었을때>라는 글이 있었는데,
미국에서 샤넬의 나치 첩자 활동을 폭로한 전기가 나온 사실을 싣고는 그녀의 부역에 대해서 <샤넬은 자기의 힘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모든것을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기회주의자였다는것이죠. 2차대전 발발시 샤넬은 프랑스에서 이미 잘나가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는 매장 문닫고 직원들을 모두 해직시켰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독일 고위층들과 가까이 지내게 됩니다.
파리의 최고급 호텔이자, 나치 점령 당시 독일 장병들이 묵었던 방돔 광장의 리츠 호텔에서 그녀는 유유히 생활했습니다. 그럴수 있었던것은 히틀러의 오른팔격인 그녀의 독일 애인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독일 장병과의 관계는 비밀이었답니다. 그리고 그이전에 샤넬 넘버 5의 소유자이자, 전세계에 향수를 널리 알려준 유태인 집안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책에서는 샤넬은 철저한 반유태주의자로 묘사했다는게 새로운 사실이었습니다.
<그녀는 큰 부자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부자가 되었고, 유태인, 조합, 프리메이슨,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에 대한 혐오를 부자들과 함께 나누었다>고 합니다. 1933년 이후 그녀는 히틀러는 대단한 유럽인이라고 평가했다네요. 여성잡지인 라파리지엔에 의하면, 코코샤넬은 유대인의 손에 들어있던 샤넬 넘버 5를 나치의 힘을 빌어 점유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치는 금방 힘을 잃었고, 샤넬은 아직도 유태인 집안에서 운영하고 있지요.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는 네티즌들
이소식을 접한 프랑스 네티즌들 대부분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것인데요.
파리가 해방되고 샤넬은 독일 고위공무원들이 점령하고 있었던 리츠 호텔에 머물렀던것이 문제되어 전쟁범죄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우정관계에 있던 처칠 수상의 도움으로 바로 석방되고는 스위스에서 10년동안 망명생활을 합니다. 프랑스내에서 그녀는 매국노로 취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프랑스내에서 알려진 그녀의 매국 행위는 단순히 독일군과의 사랑에 모든것을 걸었던 열정의 여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녀는 사랑을 위해 나라를 버리기에는 너무나 통 큰 야심을 가진것 같습니다.
망명생활에서 돌아와서 패션계에서 승승장구하게 되지요. 1971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할때까지 샤넬은 나치 부역을 강하게 부인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매국노 의심 때문에 프랑스에 묻히지 못하고 망명생활한 스위스 로잔에 묻혔다고 합니다. 과거사 청산을 철저히 했던 프랑스에서 10년의 망명생활과 프랑스에 묻히게 못한것으로 그녀가 죄값을 치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고인이 되고 40년이 흐른 지금 구체적인 자료가 제시된것입니다.
어떤 네티즌은 샤넬이라 피해갈수 있었다고 했고, 또한 어떤 이는 알려진 사실이고 단지 역사의 쓰레기속에 감추어져있었던것뿐이었다고 하더군요.
그간 프랑스에서는 그녀의 나치 부역에 대한 의심만 있다가 이번 전기에는 구체적인 증거 자료까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라 그런지 프랑스인들은 놀라지도, 새롭게 받아들이지도 않더군요.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단지 샤넬 그룹에서만 사실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불우하게 자란 샤넬은 세상에 향한 원대한 야망만 있었던 여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패션계에 이룩한 업적은 대단한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성과와 도덕성이 일치하지 못하는 것이 척박한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죽어간 이들에게 많이 미안해집니다. 문득 그녀는 살아 생전 화려했던 삶속에서 과연 행복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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