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노르망디에서 먹과 붓으로 한국 전통 미술을 알리고 있는
손차룡 작가 아뜰리에를 찾아서
영국을 갔다가 노르망디를 들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차 대전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쉽게 떠올리곤 하지요.
그지방의 아름다운 풍광은 인상파 화가들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래서 인상파 화가들의 요람이라고도 부르는데요, 노르망디 지방의
오래된 도시인, 옹플뢰르[Honfleur]에는 한국 전통 미술을 알리고 있는
손차룡 작가님이 계십니다.
손작가님 소식은 지난 2월말 포스팅한적이 있습니다.
관련글: 프랑스 노르망디에 한국문화 알리는 손차룡 작가 인터뷰
작가님은 지난 2월 26일에서 3월 20일까지 인근 도시인, 투루빌[Trouville] 시청에서 처음으로 한국 전통 문화를 알리는 전시회를 주관했습니다. 작가님을 비롯한 한국작가 8명의 작품들을 전시했는데,한국 풍경이 있는 사진, 풍경화, 도자기가 전시되었는데, 오픈식에 한복을 입고 프랑스인들을 맞이하는 작가님을 사진으로만 뵐수 있었습니다.
지난 7월말 전시회 때문에 파리에서 오셔서는 잠시만 뵈어 많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이틀밤을 지내며 작가님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들을수 있었고, 이곳 사람들이 예술을 대하는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작가님은 여독에 쩔어있는 저희 가족들을 따스하고 편하게 맞이해주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작가님을 세번째 뵙는 것인데 뵐때마다 항상 미소 가득한 얼굴을 하고 계십니다.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난 2월 전시회에 대해서 여쭈어보니 천여명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한번 다녀간 사람들이 친구들을 데리고 다시 찾기도 했다고요. 그리고는 작가님은 당신 혼자 전시회였으면 그만큼 많은 방문객은 없었을것이라고 겸손히 말씀하십니다.
지난 2월에 찾았을때는 아뜰리에를 오픈하기 위한 공사중이었습니다. 그간 공사가 끝나고 깔끔하게 정리된
작가님의 아뜰리에를 꼭 보고 싶어서 갔더랬습니다. 인상파 화가들을 배출해낸 아름다운 노르망디, 옹플뢰르[Honfleur]에서 우리 전통 미술 도구인, 붓과 먹을 이용해 빚어낸 작가님의 작품을 대하는건 아주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손차룡 작가 [옹플뢰르, 아뜰리에 앞에서]
손차룡 작가 아뜰리에
근래에 오픈한 작가님 아뜰리에입니다.
이곳에서 무료로 프랑스인들에게 먹과 붓을 이용한 그림 수업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아뜰리에가 비좁을 정도였답니다.
아뜰리에 쇼 윈도에는 한국을 소개하는 책자가 있고,
안에도 이렇게 비치해놓고는 한국에 관심가지는 프랑스인에게 책을 그냥 준다고 합니다.
먹과 붓, 그리고 한지가 있습니다.
지난 2월에 왔을때 작가님은 우리 민족과 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그리 시간이 많지 않아 충분한 말씀을 들을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그때 못들은 말씀을 원없이 여쭈어볼 작심을 했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을 읽으신듯 첫날 만나자 마자 바로 우리 전통 문화의 우수성과 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일본 도자기의 근원은 우리나라라는것과,
625전쟁이 왜 일어났으며, 끊임없이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말살하려던 외세와 권력자들에게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셨습니다.
작가님은 각나라 문화 자체에는 우열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문화가 발전할수도, 도태될수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먹으로 노르망디 풍경을 그린 손차룡 작가 작품들[아뜰리에 내부]
아뜰리에 내부
아뜰리에 내부
손차룡 작가 아뜰리에
손 작가님은 프랑스인들이 문화를 대하고 관리하는것을 보고 많이 배웠다고 하십니다.
무엇보다 당신을 비워나가는 작업을 하신다고 합니다. 아직도 스스로 화가라고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답니다.
계속 <아직 멀었다>고만 하시더군요. 인격을 제대로 갖춘데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일념으로 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동안 힘들게 살아온 당신에게 너무 매몰되어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런 자신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로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당당히 나섰다고요~ 얼마나 고통스럽게 자신과 싸움을 했는지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은 비워야만 새로운것으로 채워질수 있다고 하십니다. 머리로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제대로 비워보지 못한 저는 그게 어떤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늦은밤 작가님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지독스런 고집을 가진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 하나가 여지없이 예술가였습니다. 또한 인간의 진정성을 강조하고, 인격은 상대방을 존중하는것이라고 나지막히 이야기하는데서 질긴 강인함이 느껴졌습니다.
손작가님은 당신을 지탱하고 있는건 우리의 민족 정신이라고 하십니다. 프랑스는 사회주의 정신이 있지만 개개인은 나약하답니다. 지금도 한국에 가면 찾아뵙는 스승님이 계시는데, 그냥 시골 농부라고 하십니다. 그분에게서 우리 민족 문화와 정신을 배울수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문화 관리하는것을 꽃밭 가꾸기에 비유하시더군요. 한송이 꽃이 싹을 틔우면 물을 주고 주위 잡초들을 뽑아주는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하십니다. 예술과 문화가 그런 사회 질서속에서 발전하는것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도리어 죽이는 정치를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옹플뢰르[Honfleur]
개인적으로 작가님 말씀을 들으면 좋은게 항상 민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동해의 일본해 표기에 대해서 일본이 드러나지 않게 암암리에 벌여놓은 행악들이 많다는것,
그리고 우리만큼 좋은 머리와 정서를 가진 민족이 없는데 그게 빛을 발하지 못한 이유는
스스로를 낮추고 약하게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인데, 그렇게 만든게 바로 권력자들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우리 문화와 민족 정신에 자부심을 가지고 나아가기를 당부했습니다.
옹플뢰르
힘들때일수록 자신을 가두어 놓은 틀을 깰생각은 않고 더힘들어질것들만 붙들고 있다며,
무조건 내가 옳은게 아니라는 자세와 사고의 폭을 넓혀나가려는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것을 지키고 지탱하는데는 교육부터 잘되어 있어야된다고 합니다.
교육이 올바르지 않으면 예술도 바로 설수 없다고요,
참다운 교육만이 좋은 열매를 맺을수 있다고 하십니다.
옹플뢰르
붉은 빛을 머금고 있는 옹플뢰르의 잿빛 구름을 보고 르네상스 그림의 색감을 알수 있었다고 합니다.
작가님은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 우리의 얼이 중심으로 있는 가운데 동서양을 아우를수 있는
작품을 펼쳐내실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또한 아주 겸손하게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십니다.
어떤 작품일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옹플뢰르
조그마한 노르망디 도시인, 옹플뢰르에는 갤러리가 100여개가 된다고 합니다.
미술 애호가들은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습니다.
그런곳답게 옹플뢰르에는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모습을 어렵잖게 볼수 있습니다.
손차룡 작가 [투루빌 바닷가에서]
투루빌 바닷가 까페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테라스에 나와 커피를 마시는데,
작가님은 옆 테이블에서 혼자 잡지를 뒤적이고 있는 어떤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십니다.
제 생각에는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그린 초상화라 설마 건네실까 싶었는데 정말 건네시더라고요.
그런데 그여인은 아주 좋아하며 받고는 발딱 일어나 손을 내밀며 작가님에게 본인 소개를 합니다.
그녀의 태도가 어찌나 정중하던지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그건 작가에 대한 존중이었습니다.
저같으면 누가 이런것 그려달라고 했나 싶어 시큰둥했을겁니다.
그런데 이건 존중의 차원을 넘어선 존경이더라고요.
캐나다 여인으로 런던에서 일하고 있으며 노르망디에 집이 있어 여행 왔다가 곧 파리로 간다고 합니다.
그녀의 서투른 불어와 저의 서투른 영어가 만나, 언어의 국경을 넘나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멋진 여인이었습니다. 사진을 남겨놓지 않은게 후회스럽네요.
심지어 상관없는 저에게까지 런던에 오면 연락하라고 합니다.
본인이 안내해 주겠다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곳 사람들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알수 있었습니다
노르망디 지역신문인, Ouest France에 소개된 손차룡 작가님 기사입니다.
<그는 뽕나무 종이[한지]에 옹플뢰르를 그린다>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노르망디 지역신문인 Le pay d'auge에 소개된 손작가님 기사.
먹으로 그린다고~
아뜰리에에서 나가 조그마한 정원을 지나면 또다른 아뜰리에가 나옵니다. 아주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정원을 지나 있는 아뜰리에
손차룡 작가
작가님은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정신을 이곳 사람들에게 건네주기를 원하신다고요. 그러면 필요한 시기에 후배들이 덕을 볼수 있다고 하십니다.
프랑스인들에게 먹과 붓을 잡게하고 그림을 가르치면 어떤 반응을 하냐고 여쭈어 보니 어려워한답니다.
하지만 차츰 수묵이라는 색깔없는 그림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동양 철학에 관심이 있어진다고요.
9월에 대전시와 결탁한 전시회를 옹플뢰르에서 가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옹플뢰르에 한국을 알리고,
한국 작가들에게는 자연주의의 탄생지인 이곳에서 예술의 본질을 볼수 있게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런 한국과의 교류전은 계속 있을것이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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