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는 프랑스인들을 살펴보니

파리아줌마 2011. 12. 2. 08:47

지난 달 초, 파리에서 코리안 라이브 클럽이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한국 기업이 후원을 해서 한국에서 디제이가 와서, 케이팝 음악과

함께 백 퍼센트 한국식 클럽으로 진행된것이었습니다.

 

함께 주최한 코리안 커넥션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가볼수 있었습니다.

몇십년만에 클럽에 가본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새벽까지 광란의 밤을

보내는것을 사진으로 담아왔는데 블로그에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클럽을 하룻 밤 빌려서 하는것이었는데 코리안 커넥션 회원들이

자원 봉사로 모든 일을 해주었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전인데 음악만

나와도 몸을 흔들어대는 회원들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리고는 새삼스럽게도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에

충실해져서 춤을 추고 있는 프랑스 젊은이들에 대해 생각이 꽂혔습니다.

 

프랑스 젊은이들만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제눈에 비친 모습만 보고 글을 쓰다보니 프랑스인들로 국한시켰습니다.  또한 이는 젊은이들에게만 해당되는것은 아니겠지요. 클럽에서의 춤뿐만 아니고 다른 부분까지도 생각이 뻗치더군요. 겨울에 반팔 차림을 하고, 그리고 여름에 가죽 잠바를 입어도,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아랑곳 없는 분위기는 어디서 온것일까 싶었습니다.

 

프랑스는 오랫동안 카톨릭이 지배하고 있었던 보수적인 나라입니다. 특히 파리는 북쪽이라 더하지요.

사회적인 체면과 위신을 중요시 여기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옛날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정신이 있습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닌 자신이 올바로 서려고 하는것 말입니다.

 

이는 또한 교육에서도 찾아볼수 있습니다. 딸아이 학교의 고 3 철학 시험 문제중에 남의 시선을 두려해야 하나라는게 있답니다. 이런 부분을 문제시 삼고 있으니 청소년기부터 남의 시선에 대한 생각이 나름 정립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지, 자기와 다르다고 함부로 판단치 않습니다. 프랑스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 당신이 원한다면 이라는게 있습니다. 그게 처음에는 저를 당혹케 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다가가 도우는줄 알았는데, 그런 경우에도 꼭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보더군요, 원하면 도우고, 원하지 않으면 두말없이 물러나는것입니다.

 

남의 시선, 그 허무함에 대해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자신이 원하고, 좋은것보다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취어질지가 더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물론 나의 부족한 점을 고쳐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부분까지 남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이 아닌 모습이 되어 살아가지는 않는지 돌아봐야될 것 같습니다.

 

삶의 무게가 점점 더해질수록 남의 시선이라는게 참 허무한것 같더라고요. 남들은 내가 생각한것과 다릅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습성과 기질에 따라 오해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말과 행동의 의도 보다는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 남을 탓하는것은 아닙니다. 나 또한 남에게는

그렇게 여겨질수 있을테니까요. 이런 경우에 나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는다면 남의 시선은 가볍게

넘겨도 될일입니다. 남이 알아주는건 그리 중요하지 않을것 같거든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건널수 없는 강이 있는것 같습니다. 한때는 그 강을 메꾸어 보려고 애썼으나 그게 얼마나 무모하고도 교만한것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것은 없듯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게 무조건 좋을수만은 없겠지요. 이 또한 너무 심하면 뻔뻔하게 보일수도 있고, 시선을 의식하는 이들과 함께 있다면 그들을 곤란하게 할수도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부족한것 투성이어도 대부분 당당하고,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프랑스인들이 좋아보였던것은 사실입니다.

 

내가 교육을 받았던 사회는 온통 규제와 규율이 난무한 강압적인 보수였고, 집안 분위기는 상당히 고지식했습니다. 좋아도 싫다, 싫어도 좋다라고 하는게 미덕으로 알고 자라왔습니다. 감정 표현은 자제를 해야 했고, 나의 의견은 자주 말살되기 일쑤였습니다. 사회와 집안이 심어주었을망정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 자신도 잘한것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살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능동적이지 못한 수동적인 삶,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때 내가 대처해나가야될 것보다는 남의 시선부터 생각하고 봅니다. 그러니 내가 관여해야할지, 빠져야할지 구분하지 못할때도 있습니다. 모든 상황에 가 없으면 그렇게 될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건 프랑스라는 외국이 아닌, 사람의 기질과 자라온 환경, 받아온 교육에 따른것일겁니다.

 

무관심이 때로는 배려일수도

 

하지만 비교적 우리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는 남에게 관심이 너무 많습니다. 이곳 한인 교회에서는 기도한다는 명목으로 남의 집에 숟가락 몇개

있는지까지 알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좋은 일보다는 안좋은 일을 걱정해주는척 위선을 떨며 물어보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자신의 허전한 마음과 얄팍한 호기심 충족일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때는 무관심이 배려입니다. 

 

그리고 끔찍한 비교의식, 엄친아라는 말이 그래서 생겨난것이지요. 이게 자녀 문제에 해당되기에 중심잡고 남의 잘난 자식과 비교 안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사람은 각각 다릅니다. 남과의 비교는 자신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곤

하지요. 비교하는것도, 당하는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이러니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오는 결과라면, 거품 잔뜩 들어간 허풍, 아니면 시선 의식하느라 하고 싶은것도 못하게 되는 주눅이겠지요. 삶이 허무할수밖에 없을것입니다. 시선을 어느 정도는 의식하되 내 중심을 놓치지 않고 있다면 좋을것 같습니다. 산다는건 여러 과정들을 겪으며 이런 균형을 맞추어 가는거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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