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외국에 오래 살다보니 한국의 대가족 문화가 부러워

파리아줌마 2012. 2. 24. 07:33

이곳으로 떠나오기전 한국에 있을때 집안 일을 도우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습니다. 맏딸이 그렇게 게을렀으니 엄마는

얼마나 제가 얄미웠을까 싶습니다.

 

대학시절 엄마가 김장할때는 모른척하고 아침부터 줄행랑을

치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온갖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프랑스로 유학을 오니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어서 살것

같았습니다. 비록 집안일 도우는 것은 귀찮아했지만 맏딸로서

은근한 책임감은 있었더랬습니다.

 

부모님의 부부 싸움부터 오빠와 동생들의 소소한 일까지 나름 신경쓰고

있었습니다. 더러 속상해 하는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주려고도 했었고, 

때로는 동생들을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20대 초반에 그런 것들이 무겁게만 다가 왔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프랑스에 와서 이른바 자유[지금 생각해보니 거의 방종~]를 만끽하며 살았습니다.

 

귀가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좋았고, 엄마가 엄격히 금지 했었던 외박도 마음대로 할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원하는대로 몇년을 살다보니 외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티비에서 가족들끼리 오손도손 이야기하는것만 봐도 부럽더군요.

 

그러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 덜 외로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공부에 집중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습니다.

 

결국 인간의 공허함과 외로움은 사람으로부터 채워지지 않는다는것을 그때 알았으면 좋으련만, 메꾸어 지지 않을 모래뻘에 끊임없이, 헛되이 모래를 퍼다 나르고만 있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무촌이라는 배우자를 만났을때 이야기이고 피를 나눈 가족들은 좀 다르지요.

 

결혼 생활 6, 7년쯤 되니 살림이 손에 익숙해지더군요. 쌀, 냄비, 칼, 도마, 식재료들이 따로 놀던것이 어느날 손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들었던 때였습니다. 그래도 부엌 일은 그리 즐겁고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90년대 말에 시부모님이 오셨습니다. 당시 칠순 넘은 시어머님과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요리를 준비하는데 처음으로 부엌 일이 부담스럽지 않고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워낙 허술했던지라 어머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멀리 며느리 집에 오셨는데 편안히 대접해 드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외국에 오래 살다 보니 외로움 때문에 생겨난 가족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한국의 대가족 문화는 우리가 간직해야될 전통

 

 

우리 나라의 대가족 문화가 부럽다고 한게 단순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을 이야기하고자 한것은 아닙니다.

얼마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외로움 때문에 많이 그리웠지요. 하지만 이제는 한 차원을 넘어선 부러움이 생겼습니다. 대가족의 형태로 살든 안살든지 간에 우리가 간직해야 될 전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의 한류팬들이나 한국을 아는 프랑스인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한국의 장점은 어른에 대한 공경이라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시니컬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를 남용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에 갔다가 지하철 빈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초로의 아저씨들에게 눈총을 받았던 좋지 않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남용들 때문에 우리의 전통인 어른 공경을 좋지 않은것으로 보면 안되겠지요.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이런 예의는 어른을 위한다기 보다는 공경하는 주체, 즉 아랫 사람을 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어릴때부터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대상이 있는것이 좋습니다. 그래야만 매사에 신중을 기하고, 경거망동을 삼가하는등, 자제하며 자신을 다스려 나갈수 있을것입니다. 집안에 어른이 있어 조심하며 자란 사람들은

세상 무서운줄 알고 어른 아이 구분할줄 알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인 습성은 무시할수 없을겁니다. 그게 또한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른과 아이는 평등할수 없습니다. 상하 관계여야 합니다. 아이는 아무리 이상한 어른이라도, 어른이기 때문에

존중해야됩니다. 이는 아이를 위해서입니다.

 

프랑스인들은 아주 가족 중심적인 삶을 삽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주 사랑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따스한 사랑만 있고, 어른과 아이의 구분은 별로 없습니다. 대신 그들 나름대로 엄격한 가정교육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배워야 합니다. 잘못하면 혼나면서 모난게 다듬어져야될 것입니다. 예전부터 어른을 모시는 우리의 전통에는 윗 사람이 아랫 사람 마음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아 흔들리고 비틀거릴때 잡아주는 역할을 했을겁니다.

 

우리 나라 대가족 문화의 병폐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져다 줄수 있는 좋은 점은 있습니다. 아주 많습니다. 그렇다고 어른에게 무조건 복종, 맹종하라는건 아니겠지요. 

순종의 태도를 갖추자는것입니다.

 

아무리 옳더라도 더러 자기 목소리를 삼가할 줄도 알고, 표현해야 될때는 어른을 대하는 마음 가짐을 가지고

예의있게 말해야될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그사람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것입니다.

 

딸아이들이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가족, 친지들 못만나고 자라는게 안타깝고 미안했는데, 이제는 어른 아이 구분할 줄 알며, 어른에 대한 공경심을 가진 반듯한 아이들로 자라야 될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곤 합니다. 그게 한국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닌 사람 사는 세상, 어느 곳이라도 통할수 있는것임을 이곳에서 체험하곤 한답니다.

 

우리 나라의 대가족 문화, 지금은 형태가 많이 없어졌지만 그 정신은 간직하고 이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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