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1994년, 그해 여름

파리아줌마 2012. 3. 2. 06:56

때는 바야흐로 비행기에 흡연석이 있었던 1990년대~

 

당시 파리와 김포를 오가는 대한 항공의 뒷쪽 두칸은

흡연자들을 위한 좌석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흡연자들을 배려한 그런 시절이 있었던거죠.

 

당시 여자는 결혼한지 1년이 지났고 여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한국을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항상 바쁜 그녀의 남편은 여자를 늦게 공항에 데려다 주어

흡연석으로 배치될수밖에 없었더랬습니다.

 

몸이 좋지 않았던 여자는 13시간 비행에 담배 냄새까지 

맡으며 갈 생각에 앞이 캄캄할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마치 중병에

걸린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도 힘들어 했습니다. 옆좌석에 앉아 있던 턱수염 짙은 아저씨는

여자에게 담배 피우지 않으면  자리에 앉아가기 힘들것이라고 하면서 조금 있다 일행과 자리를

바꾸어 줄테니 그쪽으로 가라고 합니다.

 

여자는 고마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 손을 내저었습니다. 뒷좌석이라 흔들림이 심했고,

담배 연기까지 있지만 여자는 감수할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턱수염 아저씨는 쪽지를 건네면서 몇번 좌석으로 가있으라고 합니다.

쪽지에는 000씨 이리로 오시요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여자는 괜찮다고는 했지만 몸이 너무 좋지 않아서

마지못해 아저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어기적 거리며 지정된 좌석으로 가서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같은 3등석중의 한자리일 줄 알았는데, 거기는 2등석, 즉 비즈니스 석이었던 것입니다.

여자는 너무 당황해서는 뒤로 가는 분에게 언제든지 불편하면 바로 오시라고 하면서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렇게 미안해 했지만 넓고 편안한 좌석에 있으니 살것만 같았습니다. 마치 턱수염 아저씨가 여자를 살려준것만 같았습니다. 그자리에서 여자는 무엇이 그리 피곤했는지 곤한 잠을 잘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한국이 가까워오고 있었던것입니다. 힘들었던 여자의 몸이 산뜻해졌습니다.

그리고 제자리로 가서는 턱수염 아저씨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하면서 어떤 분인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분은 파리에서 한국 작가들을 데리고 대구에 전시회를 위해 가던 참이었다고 합니다. 성수기가 되어 3등석이 만석이 되어 일부 작가들은 2등석으로 갈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대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갤러리 명함을 받고 오픈식에 꽃다발을 들고 꼭 찾아뵈려고 했었습니다. 마치 생명의 은인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가지 않았습니다.

 

대구의 아스팔트가 눅진해질 정도의 무더위속에서 동생의 결혼 준비로 바쁜 친정 엄마를 따라다닌게 고작이었습니다. 몸만 이상한게 아니고 여자는 마음마저 변한것 같았습니다. 친정 아버지와 오빠의 말한마디에 울고 화내면서 친구들 조차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이상하게 변해 버린 자신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여자의 동생 부부는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왔고, 날카롭기만 했던 여자는 동생에게 잘못해준것 같아 두고간 비누각만 보아도 눈물이 철철 흘렀더랬습니다. 그리고 이상해서 여자는 동네 병원에 들러 피검사를 해보았고,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었습니다. 몸안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자는 걷는데 발이 공중에 떠있는것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여자는 모든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유난히 허약해진 몸과 날카로워진 신경, 그리고 무엇보다 비행기안에서 고마운 분을 만난것을요~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여자는 살아내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14살이 되었을때 문득 비행기안에서 만난 턱수염 아저씨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한번도 찾아뵙지 못했고, 존함도 기억하지 못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일어 안부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짙은 턱수염밖에 없는 그분이 아직도 대구에서 갤러리를 하시는지, 그렇다면 아이와 함께 찾아뵙고 싶어졌습니다. 비록 그분은 기억 못하실수도 있지만 당시 여자의 뱃속에 새생명이 자라고 있었고, 배려

덕분에 태아가 편안할수 있었다는것, 그리고 이렇게 자랐다고 인사를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2년전, 당시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던 작가들중 안면이 있는 어떤 작가의 부인을 알게 되어 그분 이야기를 했더니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여자는 무언가 텅빈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늦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잠시 잠깐 스친 인연이었지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분이었습니다. 아이와 연결된 분이었기에 더했습니다. 여자는 지금이라도 하늘에 계신 그분에게 감사함을 전하고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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