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프랑스는 어떻게 문화 강국이 되었는가?

파리아줌마 2012. 4. 13. 07:07

오래간 만에 프랑스 문화에 관한 글을 씁니다.

프랑스는 일찌기 문화와 경제는 양립할수 없음을 알고

정부에서 별도의 정책으로 문화를 육성해 왔습니다.

 

프랑스는 일시적인것보다는 지속적인데에 투자를 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당장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그만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 더러 그세대에서 빛을 발휘할수 없는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인내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프랑스의

문화 정책입니다.

 

제가 한번씩 한국이 외국에 우리 문화를 전하는데에 정부가 나서야

된다고 날뛰는 이유가 프랑스의 경우를 보아와서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연극 배우가 가난하지도 않고, 화가에게는 아뜰리에가 달린 아파트를 저렴한 가격에 세주기도 합니다.

 

문화는 그나라의 정서이자. 혼입니다. 문화가 든든한 나라는 쉬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를 알고 있는 프랑스라는거지요.

 

얼마전 현지 상황 고려치 않은 프랑스 케이팝 콘서트라는 글에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학생이 남긴 댓글을 보면, 이곳에는 한국과 비교할수 없이 많은 뮤지컬, 연극, 콘서트(아이돌을 제외한 다양한 가수), 오페라, 발레, 서커스 등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존재하는데, 지금은 한류 콘서트는 대부분의 어린애 관객들의 코묻은 돈을 대상으로 하는 일회성 돈벌이라는 점에 매우 동감한다면서, 아직 걸음마 단계인 한국 문화의 알리기에,, 말하자면 초특급 엔진이 달린 셈인데... 개미 다리에 타조 다리를 달아주고 옹호만 계속하고 있으니 속상한 거랍니다. 좌석이 얼마나 찼던간에 이렇게 계속 말도 안되는 장사만 지속하면, 엔진이 되어줄 마니아층도 떨어져 나갈거라는 글이었습니다. 파리의 케이팝 콘서트가 아닌 프랑스의 문화를 이야기 하고자 한것입니다. 

 

프랑스인들은 연극 보려가는 것을 즐깁니다. 원맨쇼부터 시작해서 고전까지 다양한 연극들이 파리의 극장에서 있습니다. 얼마전 고등학교생인 딸아이 학급은 몰리에르의 브르조아 장띠 옴므를 보려 갔다 오더군요. 옆반은 이런 외출이 더 자주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정부의 문화 지원은 예술가들에게 주는 사회적인 혜택과 더불어, 대중들이 이런 문화를 저렴하게 즐길수 있도록 재정적인 뒷받침을 해줍니다. 문화와 예술이 대중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프랑스의 모든 국립 박물관은 만 18세까지 무료입니다. 아이들 데리고 부담없이 르부르 박물관 가서 모나리자를 보고, 비너스를 감상할수 있습니다. 또한 일년에 영화를 3천원대의 가격에 볼수 있는 행사가 두어차례 있습니다. 그런 날은 영화관 앞은 사람들 줄이 엄청나게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저도 결혼전에는 그때 영화를 보러가기도 했었더랬습니다.

 

문화와 예술을 대하는 프랑스인들의 태도

 

노르망디에서 활동하는 쟝 오랑쥐 화가 작업실

 

정부의 이같은 지원이 프랑스를 문화 강국으로 부상시킨 이유이기도 할것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에 앞서

힘겹게 싸워온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프랑스가 유럽의 문화 중심지가 되기까지 겪어온 발자취는 간단하지는 

않았습니다.

 

1874년 파리 살롱전에 <인상.해돋이>작품이 전시되었을때 세인들에게 또라이~ 소리를 들었던 모네였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해와 바다에 대해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색을 표현한게 아니고 물감을 자기 멋대로 발라놓았다는 혹평을 받았지요. 알고 있는 색으로 표현하지 않고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을 연출한 인상파 화가의 대가인 모네입니다.

 

나뭇잎이 때에 따라 다른 빛과 융화되어 나타나는 색깔을 표현한 모네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탈피하려고

든 진보적인 예술가였습니다.

 

19세기의 일이었습니다. 이미 몇백년전부터 대철학자들을 배출했었고, 사회 통념을 탈피하고자 애쓴 이들 중에는 예술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인들이 그림을 그려 작품 활동을 하는 화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천박하다고 보았던 우리들의 예전 사고 방식과는 무척 다르더군요. 프랑스인들은 화가들에 대한 존중이 가슴 깊이 박혀있는것 같았습니다.

 

노르망디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 손차룡 작가님을 찾았을 때였습니다. 투루빌 바닷가가 보이는 까페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작가님은 스케치북을 꺼내시더니, 옆자리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는 여인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속으로 허락도 없이 저렇게 사람 얼굴을 스케치 해도 되나 싶어 은근 걱정스러웠습니다.

대충 작업을 끝내시더니 그 여인에게 그림을 보여줍니다. 제가 우려하던 것과는 달리 그여인은 발딱 일어나더니 손을 내밀고 작가님에게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소개하더군요, 그 태도가 얼마나 정중했는지 모릅니다.

런던에서 일하고 있는데 런던에 오면 자기가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정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여기 사람들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잘 알수 있었습니다.

 

그때 손작가님의 친구라는 프랑스 화가를 만났습니다. 장 오랑쥐[Jean Orange]라는 화가는 첫눈에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이는 한 50대 정도로 보였는데, 결혼도 하지 않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더군요.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손 작가님 소개로 그의 아뜰리에를 방문할수 있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그는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춘듯했습니다.

아이 같은 해밝은 미소를 가진 그는, 작품에 그의 정신 세계가 드러나 그림이 아주 밝고 환했습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루중 많은 시간을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노르망디 지방에서 잘 나가는 화가였습니다. 80년대에는 르몽드지 삽화 화가로도 활동했다고 하면서 신문 스크랩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손작가님과 함께 이야기 한게 만약 한국이라면 저런 사람이 화가로 성공할수 있었겠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보다는 온전치 못함을 먼저 보았겠지요. 프랑스 미술계는 그의 작품만을 보고, 재능과 노력을 인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같은 정부의 지원과 사람들이 가진 문화 예술에 대한 존중 의식이 프랑스라는 나라를 문화 강국으로 만든게

아닐까 합니다. 문화는 형이상학적인게 아닌 가장 낮은 자세로 대중과 호흡할 수 있을때 그 힘을 발휘하겠지요. 현실속에서 대중들에게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무엇이라고 할수 있을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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